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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주 250만원→5만원 … 개인투자 문턱 확 낮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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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삼성전자가 주식의 액면가를 주당 5000원에서 100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의 1주를 50분의 1로 쪼개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늘린다는 의미다.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상 첫 50대 1 ‘깜짝’ 액면분할

삼성전자는 이런 액면 분할을 통해 발행주식 총수를 보통주 기준 1억2838만6494주에서 64억1932만4700주로 늘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주가는 현재의 약 250만원에서 5만원 선으로 낮아진다.

이번 결정은 3월 23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돼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주식 액면 분할을 단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조 주식 매입, 6조 배당 이어 발표

이번 결정에 대해 삼성전자는 31일 “주주 가치 제고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덕에 200만원대의 이른바 ‘황제주’로 등극했다. 하지만 워낙 주가가 비싸 개인투자자들은 1주를 사기도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주 환원 정책의 수혜를 개인투자자들은 거의 누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삼성전자는 주식에 대한 가격장벽을 낮추고 일반투자자들이 사고팔기 쉽게 만들자는 차원에서 액면 분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액면 분할은 자본금에 변화가 없어 기업의 본질 가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주식 거래량은 늘고 주주 수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결국 ‘황제주’를 ‘국민주’로 변신시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면모를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 저변 확대와 유동성 증대효과 등으로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주가 부양과 수익성 위주 경영에 대한 의지가 명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장중 한때 6% 가까이 급등하며 260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장 막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전날보다 5000원(0.2%) 오른 249만5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지난해 4차례에 걸쳐 보통주 330만2000주, 우선주 82만6000주를 매입해 소각했으며, 이를 위해 총 9조2000억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의 50%에 달하는 5조8300억원 전액을 배당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전년보다 46% 늘어난 액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이사회는 보통주 2만1500원, 우선주 2만1550원의 주당 기말 배당을 결의했다.

삼성전자의 액면 분할 결정은 철통 보안 속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시장과 투자자들은 물론 삼성 내부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무·IR 등을 담당하는 극소수 인사가 기밀 회의를 통해 논의했으며 지난해 말 재무관리, 인사, 계열사 간 협의를 위해 만들어진 사업 지원 태스크포스(TF)가 전반적인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호 사장이 TF팀장이다. 내부적으로 최종 방안을 마련한 뒤 구속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변호사를 통해 보고했으며, 이 부회장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삼성 “그간의 주주환원 정책 연장선”

그간 액면 분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온 삼성이 이날 전격적으로 액면 분할을 결정한 배경을 두고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2월 5일)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그간 꾸준히 추진해 온 주주 환원 정책의 연장선이자 완결편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실 삼성전자의 액면 분할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는 불리한 이슈다.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가진 삼성SDS의 지분과 삼성전자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늘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면 교환 비율이 불리해진다.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려고 해도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를 계속하는 것은 미래 투자 여력을 줄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결국 일반 투자를 활성화하고 투자자 저변을 확대해 장기적으로 회사 주식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유동성 커져 주가 긍정 영향”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부문별 확정 실적 발표를 통해 지난해 반도체에서만 35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전체 연간 영업이익 53조6500억원 가운데 3분의 2(65.6%)가량을 반도체만으로 벌어들였다는 얘기다.

특히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전체로는 47.4%, 4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고 수준인 51.6%를 기록했다. 100원어치 물건을 팔아 50원 가까운 금액을 이익으로 남겼다는 뜻으로, 제조업체에선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이다.

이는 지난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건립, 모바일기기의 보급 확산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사업의 실적 증가세도 뚜렷하다. 디스플레이 사업의 연간 영업이익은 5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2조2300억원의 2배로 증가했다. 아이폰X이 OLED 패널을 채용하는 등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의 OLED 수요가 많이 증가한 덕을 봤다.

스마트폰 사업도 3년래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힘을 보탰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1조8300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2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삼성의 갤럭시 프리미엄 모델이 꾸준한 판매액을 이어 갔고, 경쟁작이던 애플의 아이폰X의 시장 반응이 기대를 밑돌면서 반사이익을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액면분할 발표 뒤 한때 260만원 돌파

반면 소비자가전(CE)부문은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 줄어드는 등 부진했다.

반도체의 수퍼 사이클(장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는 올해도 실적 호조를 이어 간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다만 중국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스마트폰·TV 등의 분야에서 미국·중국·일본의 반격이 거세지는 점은 부담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가치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점이 실적의 변수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게 부담이지만 급작스러운 실적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조현숙·최현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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