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영희칼럼

정치에 울고 야구에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국의 정치에서 웃음 찾기가 풀더미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워 보인다. 정치가 너무 살벌해 국민은 항상 긴장하고 가슴 졸이면서 산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과 로널드 레이건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정치적인 어려움을 극복한 대통령들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유머는 의회토론에서 살기(殺氣)를 걷어내고 웃음이 넘치는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처칠식 유머는 이렇다. 노동당의 애틀리 정권 때 처칠이 화장실에 갔다. 애틀리 옆에 유일한 빈자리가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가 볼일을 봤다. 애틀리가 왜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처칠의 대답. "귀하는 큰 걸 보기만 하면 국유화하려고 드니 내 것을 국유화하자고 할까 봐서요."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언론인인 폴 존슨은 지도자가 갖출 자격 조건으로 도덕적 용기, 판단력, 우선순위에 대한 감각, 집중력, 그리고 유머감각을 꼽았다. 그는 유머감각 없이 성공한 지도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언제나 근엄했던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1870~71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을 지휘한 독일의 전략가) 같은 사람도 평생에 두 번은 웃었다. 한 번은 프랑스 요새가 난공불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고 또 한 번은 그의 장모가 죽었을 때다." 정적(政敵)들로부터 유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600명의 남자가 참석한 만찬에서 한 말도 소개됐다. "우는 것은 수탉이지만 알을 낳는 것은 암탉입니다."

레이건의 유머는 감각적이었다. "대통령이 되니까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 난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내 고교 성적표를 일급 기밀로 묶어 버렸어." "난 점심식사 때는 커피를 안 마셔. 오후 내내 정신이 말똥말똥할까 봐서." 추남으로 알려진 링컨의 유머 한 토막.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어떤 사나이가 나타나 권총을 내 얼굴에 들이대는 게 아닌가. 까닭을 물었더니 사나이는 자기보다 못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고 맹세했다잖아. 내가 대답했지. 그렇다면 날 쏘시오. 내가 당신보다 못생겼다면 더 살고 싶지 않소."

한국 야구가 미국을 이겨 오랜만에 웃음으로 국론이 통일된 날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은 한국 정치판이 유머의 불모지임을 잘 드러냈다. 그는 한국 야구가 미국 야구를 이긴 것을 통쾌한 일이라고 전제하고는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대만 골라 꺾은 게 우발적인 것인지 정부의 지시였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전혀 우습지 않은 이계진(李季振)의 '계변(季弁)'이다. 농담으로라도 노무현 대통령-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김응용 삼성 라이언스 사장-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부산상고 마피아"가 반일.반미감정에서 미국과 일본을 꺾도록 조종했다고 말하고 싶었다면 한국 대표팀에 대한 모욕이다. 선거의 계절이지만 정당의 대표와 대변인이 야구 이긴 데까지 논평을 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기업은 기업인들에게, 야구는 야구인들에게 맡겨 둬야 세계 정상에 오른다. 굳이 한마디 하고 싶으면 국민에게 좌절감만 안기는 정치를 반성하고 지금부터는 기업.야구.축구.골프.스케이팅같이 정치도 글로벌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정치에 울다가 야구에 웃는 국민의 기분에 '초'는 치지 말았어야 했다.

웃음은 사람의 몸속에 엔도르핀을 만들어 내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암의 웃음요법이 유행을 탄다. 그렇다면 웃음요법이 가장 절실한 데가 말기암 같은 중병에 걸려 아들레날린을 뿜어내는 우리 정치가 아닌가. 유머와 웃음이 있는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백악관에는 대통령의 연설에 조크를 집어넣는 담당이 있다. 청와대와 각 정당에도 조크 담당 비서관을 두던지 인건비가 부담스러우면 벌써 상당수에 이른 외부의 유머라인들과 계약이라도 맺어 웃음 있는 정치를 할 수는 없는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