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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빚 탕감된 205만명, ‘부채 요요’ 시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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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5만 명. 최근 10년간(2008~2017년) 빚을 일부라도 탕감받은 채무자 수다. 법원 개인파산·회생 인용 건수,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 확정 건수를 모두 합친 수치다.

빚 탕감 30대, 2년 뒤 또 5000만원 #면책 돼도 다시 빚 내는 악순환 #가계부채 계속 증가하는 한 원인 #“수억 채무조정이 법원 인가로 끝 #구제 넘어 신용상담·교육 강화를”

지방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이우영(33·가명)씨도 205만 명 중 1명이다. 그는 20대 시절 생활비로 고금리 대출을 끌어 쓰다 빚이 5000만원 넘게 불어나자 감당할 수 없어 2010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5년간 변제금을 낸 끝에 2015년 면책 판정을 받았다. 쌓여 있던 원리금의 절반도 갚지 않은 채 빚에서 해방됐다. 여기까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개인회생 딱지를 떼자마자 그가 찾은 곳은 저축은행·대부업체였다.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서였다. 30%대 고금리로 1000만원을 대출받아 브로커를 통해 필리핀 여성과 결혼했다. 바로 아이가 생겼고 생활비가 모자라자 또 대출을 받았다.

2년 만에 쌓인 빚이 5000만원. “150만원 월급으로는 이자조차 갚기 어렵다”는 이씨는 다시 개인회생처럼 빚을 감면받을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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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채무자에게 계속 빚을 깎아주는데 왜 가계부채는 늘기만 할까. 그 배경엔 빚을 깎아줬는데도 빚이 더 쌓이는 ‘부채 요요현상’이 있다. 채무조정으로 부채는 얼마든지 한꺼번에 털어낼 수 있지만 쉽게 빚을 내는 습관은 좀처럼 고치지 못한다. 채무 감면자를 위한 제대로 된 맞춤형 재무상담·신용관리가 따라주지 않아서다. 이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다시 빚에 의지하고 채무의 늪에 빠지기 쉽다. 마치 식이조절·운동 없는 지방흡입과 같다.

개인회생 중인 김선호(가명) 씨의 뒷 모습. 김씨는 두 차례 개인회생을 했지만 다시 대부업체 3곳에서 빚을 지고 있다. 변선구 기자

개인회생 중인 김선호(가명) 씨의 뒷 모습. 김씨는 두 차례 개인회생을 했지만 다시 대부업체 3곳에서 빚을 지고 있다. 변선구 기자

“채무 조정을 받은 사람 거의 대부분이 다시 고금리 빚을 진다고 보면 됩니다.” 전주시 금융복지상담소에서 일하는 김선유 상담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걸려도 소양교육을 받고 실업급여를 받아도 구직활동을 증명하지 않느냐”며 “많게는 수억원의 빚을 탕감해주는 채무조정은 법원 인가만 받으면 아무 사후관리 없이 끝이라니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당 못할 빚을 감면받는 것도 채무자의 권리다. 법원과 신용회복위원회가 개인파산·개인회생·개인워크아웃 같은 채무조정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사후관리다. 신복위는 워크아웃 확정자를 대상으로 한 차례 신용교육을 할 뿐이다. 법원은 개인파산·회생 인가를 내주면서 어떠한 교육·상담·컨설팅도 조건으로 내걸지 않는다. 현재의 빚 부담에서 구제해주는 데 집중할 뿐, 미래의 빚 재발을 막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회생·파산으로 한 번 면책을 받은 채무자가 다시 연체에 빠지지 않도록 금융교육·신용상담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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