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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꾸는 광화문 현판 … 검은 바탕 금박 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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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30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풍경. 광화문 현판이 내년 상반기에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뀐다. 현재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경복궁 광화문 풍경. 광화문 현판이 내년 상반기에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뀐다. 현재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관광객들이 광화문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잇따라 눌렀다. 현판 바탕은 흰색이고, 글자는 검은색이다. 2010년 광화문 이전·복원에 맞춰 만든 현판이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에 이 현판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뀐다.

2010년 ‘흰 바탕 검은 글씨’ 복원 #문화재청 옛 사진·자료 정밀분석 #내년 상반기 중 새 현판 달기로 #자료 적지만 부실 복원 비판 일듯

문화재청은 1860년대 경복궁 중건 당시 제작된 광화문 현판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자임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2016년 4월 현판 색상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후 사료·고사진 등 자료조사, 사진 정밀 분석한 결과 현판의 바탕색과 글자색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미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이전 광화문 사진. [연합뉴스]

미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이전 광화문 사진. [연합뉴스]

◆그동안 어떤 논란이 있었나=광화문 현판은 2010년 복원 당시부터 목재 균열·색상 오류 등의 논란이 일었다. 당시 문화재청은 도쿄대의 1902년 유리건판 사진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1916년 유리건판 사진을 근거로 현재의 현판을 제작했다. 그러나 1893년 9월 이전에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이 2016년 2월 발견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치밀한 조사를 통한 문화재 원형 복원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문화채청은 복원 당시 자료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사진과 보존 상태가 보다 양호한 도쿄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 외에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도쿄대 소장 사진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과 달리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사진은 현판의 바탕색이 글자색보다 진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나 금색 글씨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문화재청은 2016년 4월 “자문회의 결과 현판 바탕과 글자 색상 문제를 처음부터 재검토하기로 했다”며 “정밀 분석을 추가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 [중앙포토]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 [중앙포토]

◆어떻게 본래의 색을 찾았나=문화재청은 현판의 원래 색상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 1년간 중앙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광화문 현판 색상 과학적 분석 연구’를 추진했다. 실험용 현판을 제작하고, 이를 원래 위치에 게시해 놓고 옛 방식으로 제작한 유리건판으로 촬영한 후 분석해 바탕색과 글자색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①바탕색과 글씨 조합 8개 현판 제작

우선 4가지 현판 바탕색(흰색·검은색·검은색 옻칠·코발트색)과 다섯 가지 글자색( 흰색·검은색·금색·금박·코발트색)등 5가지 글자색을 넣은 현판 4개를 제작했다. 이후 이를 각각 고색 단청(시간이 경과해 퇴색한 예전의 단청과 비슷하게 하는 단청 기법)과 신단청을 적용한 실험용 현판을 제작했다. 예를 들면, 하얀 바탕에 검정색과 코발트색 글씨를 양각하고, 이 현판을 고색 단청과 신단청 등 2종류로 만드는 식이다. 검정 바탕에 금칠·금박·흰색 글씨를 쓰고, 현판도 신단청과 고색 단청 2종류로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제작한 현판은 모두 8개다.

옛 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으로 재현해 본 현판. [연합뉴스]

옛 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으로 재현해 본 현판. [연합뉴스]

②촬영 시기와 시간대까지 분석

연구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옛 사진에 나타난 그림자 형태 등으로부터 촬영 시기와 시간대를 분석했다. 당시와 가장 유사한 시기를 예측해 촬영하기 위해서다. 촬영 당시의 위치와 거리까지도 고려했다. 연구팀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진은 1916년 8월경 오후 2시쯤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반면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고사진은 1892년 12월 또는 1893년 2월 오후 12시 30분 이후 촬영한 것으로 추정했다.

광화문 주변 바닥이 예전과 달라 비치는 반사광이 사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 요소를 반영하기 위해 미니어처 촬영 실험 분석도 했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김성도 서기관은 “사진과 반사광에 대한 분석 모두 원래의 색을 찾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김 서기관은 “금칠과 금박이 재료에 따라 반사율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기존 사진 자료와의 비교 등 분석 결과 글씨는 금칠은 아니고 금박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분석 결과를 종합한 결과,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글자인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문화재청은 아교와 전통 안료를 사용한 전통 단청, 화학 접착제와 안료를 사용한 현대 단청 중 어느 방식으로 단청할 것인지를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시범 현판에 두 가지 방식의 시범 단청을 하고 10월까지 모니터링을 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광화문 현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는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을 복원한 과정을 돌이켜보면 안이하게 접근한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하지 않고, 전문가들의 논의와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복원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문화재 복원엔 원형에 대한 기준 시점을 언제로 볼것인가에서부터 늘 논쟁거리가 잠재돼 있다. 그런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복원을 추진하고 근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문화재청 내부에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현판 논란을 계기로 문화재 복원 논의와 절차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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