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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등급 매기고, 지역 언론사 우대하고…미디어 관계 마음대로 재편하는 IT기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소셜미디어에서 급격히 퍼진 가짜뉴스. 덴버 가디언이라는 매체도, 기사 내용도 모두 다 거짓이었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 필터링 없이 확산됐다. [인터넷 캡처]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소셜미디어에서 급격히 퍼진 가짜뉴스. 덴버 가디언이라는 매체도, 기사 내용도 모두 다 거짓이었지만 소셜미디어상에서 필터링 없이 확산됐다. [인터넷 캡처]

최근 들어 국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용자들의 권익 보호와 편리성을 제고시킨다는 명목하에 뉴스·미디어 관련 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급증하는 가짜 뉴스를 방지하고 이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콘텐트를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은 애당초 목적과는 다르게 온라인 이용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여론을 오히려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품질, 신뢰도 높은 뉴스 전달하기 위함" #가짜 매체, 가짜 뉴스로 홍역 앓은 소셜미디어들의 대책 #"전문성 결여된 일반인들의 참여가 해결책이 될 수 있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겸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사는 지역이나 도시에서 만들어진 뉴스들을 더 많이 보여주기로 했다"며 "이는 품질과 신뢰도 모두 높은 뉴스를 전달하기 위한 업데이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이스북 뉴스피드 정책의 변화를 설명하는 글. 저커버그는 이 글에서 "앞으로 신뢰도 높은 뉴스를 장려하기 위해 지방 뉴스를 더 자주 노출시키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이스북 뉴스피드 정책의 변화를 설명하는 글. 저커버그는 이 글에서 "앞으로 신뢰도 높은 뉴스를 장려하기 위해 지방 뉴스를 더 자주 노출시키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이 말하는 지역 뉴스는 지방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나 이용자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소식을 가리킨다. 특히 지방 언론사들의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지방 소식을 공유하면 수도권의 주요 언론사 소식보다 더 많이 노출되게 된다.

예컨대 미국 텍사스에 사는 페이스북 이용자의 뉴스피드에는 앞으로 뉴욕타임스·CNN이 올리는 뉴스보다 지역지 '댈러스 모닝뉴스'가 전하는 뉴스가 더 자주 올라오게 된다.

페이스북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가짜 뉴스가 널리 유통된 책임으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덴버 가디언'이라는 가짜 매체가 쓴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사건을 수사하던 연방수사국(FBI) 직원이 자살한 채 발견됐으나 타살이 의심된다’는 가짜 뉴스를 50만 명이 넘게 퍼날랐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우선 미국 내에서 먼저 시행하고 연중 다른 서비스 지역에서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포털 기업 관계자는 이번 정책에 대해 "지역 뉴스를 전진 배치하는 것은 한국 실정에는 잘 맞지 않는다"며 "이용자가 원하는 뉴스 카테고리를 직접 취사선택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페이스북은 올해 들어 뉴스피드 정책들을 연이어 대대적으로 바꾸는 중이다. 저커버그는 11일 "뉴스피드를 기업과 언론매체에서 가족과 친구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가족·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아야 할 공간에서 신뢰가 떨어지는 뉴스와 광고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20일에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해서 뉴스 매체에 대한 신뢰도를 측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개별 언론사들에 대한 신뢰도를 묻고 이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조용범 페이스북 코리아 대표도 26일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 평가는 한국에도 적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뢰도 평가의 구체적인 항목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은 언론사 뉴스는 좀 더 많이 노출되고, 부정적인 코멘트를 받은 언론사 페이지는 노출이 덜 되는 식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재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뉴스 콘텐트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해온 페이스북이 내부적으로 '집단 지성을 통해 뉴스 신뢰도를 평가하는 것이 도움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이용자들이 직접 뉴스를 생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구글이 26일 미국 내쉬빌·오클랜드 2곳에서 시범 출시한 '불레틴'(단신 뉴스) 애플리케이션(앱)은 시민들이 직접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기사를 쓸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IT 기업들의 이 같은 실험이 가짜뉴스를 막고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온라인 매체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직업적 전문성이 결여된 일반 시민이 뉴스를 제작·확산하는 것이 최근 페이스북·구글 등이 직면한 가짜뉴스 파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뉴스 재배치 조작 등 외부 세력 개입 논란으로 홍역을 앓은 네이버도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뉴스 정책을 연거푸 도입 중이다. 25일부터는 유사한 뉴스를 자동으로 묶는 '클러스터링' 기능을 PC 화면에 적용했다. 아직은 뉴스 편집자와 자동 뉴스 배치 시스템을 병행하는 네이버는 연내 인공지능이 모든 뉴스를 스스로 배치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스템은 오히려 뉴스 소비의 다양성을 지양하고 뉴스 가독성을 떨어지게 한다는 여론이 많다.

이재국 성균관대 신문방송학 교수도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뉴스를 평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쇼킹하다”고 평가한다.

이재신 교수는 "여러 기업이 시도하고 있지만,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이보다는 가짜뉴스가 실제로 유통됐을 때 어떤 식으로 긴박히 조치를 취하고 피해 사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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