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집행부의 대표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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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우조선의 노사분규가 타결 일보 전에서 원점으로 돌아간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대우조선의 노사분규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은 대우조선이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일 뿐 아니라 심한 불황업종이라는 점, 또 작년에 인명사고까지 난 격렬 분규를 겪었다는 점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노사분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우조선의 임금협상은 특히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적자기업의 임금인상이 어느 수준에서 타결되며 또 종업원이 1만5천명이나 되는 대기업에서 노사가 어느 절차를 통해 임금협상에 합의를 보느냐는 현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금협상에 중대한 시사가 될 것이다.
대우조선의 임금협상은 곡절이 많아 당초 기본원칙엔 합의해 놓고 파업기간 중의 임금지급 문제로 한번 깨어진 적이 있는데 이번엔 노사대표간에 잠정 합의된 임금 인상안이 노조총회에서 부결됨으로써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조합원의 61·9%가 반대하는 압도적 다수의 부결이다.
노조집행부가 합의를 해주고 노조대의원회의에서도 의결된 임금협상 안이 왜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었는지, 또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에 대해선 시비를 보류코자 한다.
임금협상과 같은 중대한 문제는 조합원 전체의 총 의에 합치해야 하며 대우조선 조합원들이 그런 판단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임금협상의 관행과 노조집행부의 대표성 문제다.
노사간의 임금협상은 쌍방 대표자간에 할 수밖에 없다. 대표자는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재량권이 있어야 협상이 가능하다. 임금협상은 노사양측의 입장이 있는 만큼 어느 일 방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 어차피 노사 모두가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갖게 마련이다.
그 불만을 적절히 배분하는데서 원만한 노사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우조선의 경우와 같이 협상대표의 잠정 합의 안이 압도적 다수로 부결되었다는 것은 당초 협상대표가 조합원의 전체의사를 잘못 판단하고 협상에 임했거나 노조집행부의 대표성·지도 성이 불신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조합원 내부의 헤게모니다툼이나 일부 강경파의 선동 때문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노사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임금협상에선 그야말로 재량권을 가진 실세가 나서야 하고 일단 합의된 것은 실천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보장 안되면 임금협상자체가 무의미 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도 택시임금협상에서 노사간에 합의된 것이 총회에서 부결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노조 측의 대표성 확립문제는 우리나라 노조의 공통적인 문제로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임금협상이나 앞으로의 장기적인 노사관계를 위해 중대한 쟁점이 될 것이다.
노조의 대표성이 문제되는 것은 물론 노조만의 책임에만 돌릴 수는 없다. 노조의 역사가 짧고 제대로 육성되지 못했다는 점, 노조활동의 건전한 관행이 미흡하다는 점, 노조활동에 정치적 색채가 많이 가미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시간을 두고 하나씩 고쳐 가야겠지만 당장 눈앞에 벌어진 노사분규를 원만히 수습하기 위해선 노조대표들의 대표성과 지도 성을 노사 모두가 존중, 육성해 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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