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화가 없다-대우사태와 토론장의 오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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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우조선의 노사분규는 기본급인상 등 원칙문제엔 합의해 놓고 파업기간중의 임금지급 문제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파업기간중의 임금을 회사측은 5월7일에 50%, 12월말에 50%를 분할 지급하겠다고 한 반면 노조 측은 5월7일 전액 지급을 요구해 타결일보직전에서 무산되고 직장폐쇄까지 갔다는 것이다. 결국 파업기간 중 임금 50%를 5월에 지급하느냐 12월에 지급하느냐로 판이 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12일 오후 무역회관에서 열린「시장개방과 대응전략」이란 세미나에선 낙농업자들이 쇠고기 수입개방을 지지한다고 토론자들에게 쇠똥을 뿌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번 쇠똥을 맞은 토론자중의 한사람은 사무실에서도 같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언뜻 보면 상관없는 그 같은 두 사건에서 요즘 우리사회에 흐르고 있는 우려할 만한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 대화나 토론보다는 행동이 쉽게 앞선다는 것이다.
물론 대우조선사태가 그토록 악화된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파업기간중의 임금지급시기는 하나의 뇌관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1만5천 여명의 일자리가 달려 있는 우리나라 유 수의 조선소가 그런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직장폐쇄조치까지 갔다는 것은 크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우조선사태는 근본이 되는 임금인상문제가 타결된 이상 불원간 수습되리라고 보지만 직장이 문을 닫는 마지막 사태를 쉽게 생각하는 풍조야말로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노사양방은 뼈를 깎는 고통을 참고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대화를 하고, 설득을 하고, 또 합의를 보았어야 했다. 대우조선이 며칠이라도 문을 닫는다는 것은 사기업적 차원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미 빚만 해도 1조4백억 원에 달하는데 노사의 확 집으로 인해 일을 못하는 사태가 되면 그만큼 사회에 폐해를 끼치는 결과가 된다.
노사양방은 대우조선쯤 되면 이미 어느 누구 것도 아닌 국민적 기업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는 성의와 인내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요즘 소와 민주화시대를 맞아 각 계층의 요구와 주장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비례해서 그것들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하고 관철하는 지혜도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관철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옳은 주장이 다수 모이면 전체로서는 옳게 되지 않는다. 이해의 상충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민주사회에선 끝없는 대화와 설득, 양보가 필요한 것이다.
세미나 석상에서 자기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쇠똥을 던지는 일이나 지엽적 문제로 큰판을 깨 버리는 일이나 모두 민주화시대에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폐습이다.
우리사회는 좀더 어른 다와 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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