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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발권 권력에 맞선 암호화폐, 인터넷 저항정신의 변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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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질고 마음씨 착한 왕이 있을까? 역사속에서 그것은 늘 이상이었다. 덕(德)으로 인(仁)을 행하는 왕. 그런 왕이 이끄는 정치를 맹자는 왕도정치라 했다. 플라톤은 철인이 지배하는 국가를 이상국가로 꼽았다. 그 철인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매한 선인들은 고대로부터 착한 왕이 다스린다면 세상은 평화롭고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었다.

가상세계 인터넷에도 왕이 있다면 그 왕은 착한 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요즘 이렇게 묻고 있다. 인터넷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구글은 착한 신이 될까? 인터넷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페이스북은 합리적인 집단 지성을 대변할 수 있을까? 인터넷의 모든 물건을 판다는 아마존과 알리바바는 정의로운 상거래를 주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인터넷은 현실과 다른 전통이 있다. 인터넷은 그것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국제기구도 없고 어느 국가,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의 모든 네티즌은 인터넷안에서 모두 동등하며 자유롭다고 여긴다. 21세기 디지털 신대륙에 정착한 디지털 원주민들은 애초부터 왕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전설의 해커 리처드 스톨먼(Richard Mattew Stallman)은 인터넷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인식한 철학자이자 최초의 인터넷 저항운동가였다. 그는 정보를 독점하거나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했다. 그는 GNU선언을 통해 자유소프트웨어(copyleft) 운동을 벌였다. 상업적인 탐욕과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터넷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리눅스는 이런 정신을 이어받은 오픈소스로 탄생한 가장 위대한 소프트웨어라고 불린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에릭 슈밋(Eric Emerson Schmidt)은 이런 인터넷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정부주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에니악(ENIAC)과 같은 초기 컴퓨터는 큰 공장과도 같은 모습이어서 모두가 함께 들러붙어 일을 했야 했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가 나왔지만 곧 모두 연결되었다. 그래서 참여, 개방, 공유라는 개념은 인터넷과 컴퓨터의 당위적 윤리가 아니라 내재된 본능과 같다. 모두가 동등한 수평적 네트워크인 인터넷에서 ‘왕’은 필요없다.

발권권력에 맞서 독립 화폐를 꿈꾸는 암호화폐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의 저항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블록체인기술을 적극 알려온 돈 탭스콧(Don Tapscott) 회장은 블록체인이 ‘정보의 인터넷’을 ‘신뢰의 인터넷’으로 바꿀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산거래장부라는 기술로 중앙통제기관이나 서버 없이 서로 믿고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생명체의 진화와 닮은 모습이다. 생명체는 수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세포안에는 모두 동일하게 복제된 DNA가 담겨있다. 일종의 분산거래장부다. 그리고 각 생명 개체는 그 부모의 결합을 따라 내려온 것이므로 자신을 바꾸거나 부정하려면 모든 조상들의 결합내역을 수정해야 한다. 스스로 블록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블록체인 혁명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일종의 디지털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시민권같은 개념을 적용해 민족과 인종, 종교와 지리적 제한을 뛰어 넘는 디지털 국가연합이나 디지털 가상사회를 꿈꾼다. 현실의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넘어 기술과 표현이 자유롭고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세상을 언젠가는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기술로서 구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와 투기의 규제 필요성 논란이 혼란스럽다. 지금은 마치 왕정복고주의자,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뒤섞여 근대시민의식이 경쟁하던 그 시대를 보는 느낌이다. 착한 왕은 있을까? 아니면 ‘깨어있는 시민’의 집단지성은 가능할까? 완전한 평등사회는 가능할까? 미래를 꿈꾸는 우리의 논의가 생산적이길 바란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