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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협 회장 선출, 낙하산·셀프 연임 차단할 롤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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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광기
김광기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금융업계 협회장·지주회장 자리는 으레 ‘낙하산’이나 ‘셀프 연임’으로 채워지는 게 관행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달라진 건 없다. 각종 협회장과 유관기관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정권에 연줄이 닿은 인물들이 속속 차지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셀프 연임(CEO가 뽑은 사외이사들이 CEO 연임을 결정) 시비를 뚫고 3연임의 뜻을 이뤘다.

200개 넘는 회원사 직접 참여하는 비밀투표 전통 #금융지주 회추위, 주주 참여 100명 회의로 확대를

그런데 별종이 하나 있다. 금융투자협회다. 금투협은 회장을 뽑을 때면 회원사(현재 241개) 대표자들이 직접 모여 비밀 투표를 한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유효한 경쟁을 위해 후보를 3배수 추천하는 전통을 지킨다. 후보는 관료나 정치인이 아닌 증권업계 CEO 출신자가 대부분이다. 회장 후보들은 보름~한 달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회원사들을 방문해 소견을 발표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수많은 회원사가 여러 후보를 놓고 직접투표를 하다 보니 결과는 끝까지 예측불허다. 현직 회장이 연임에 실패했는가 하면, 경제부처 장관을 친구로 둔 후보가 역풍을 맞아 떨어지기도 했다. 때마침 4대 금투협회장을 뽑는 총회가 25일 열렸다. 총회가 열린 여의도 금투협빌딩 3층 불스홀에선 무려 213명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금투협 방식의 회장선출은 누가 봐도 투명·공정하며 민주적이다. 무엇보다 3배수 이상의 후보 추천과 비밀투표를 통해 충분한 경쟁과 선택권을 존중한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우리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협회나 금융기관에선 여전히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회추위가 밀실에서 후보를 한명 정해 추천하면, 이사회나 주주총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이를 수용한다. 단독 후보는 경쟁이 두려운 낙하산이거나 기득권 현직 CEO 둘 중 하나일 공산이 크다. 과거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통일주최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을 뽑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이젠 고쳐야 한다. 이런 게 적폐청산이다. 문 정부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낙하산의 단맛을 스스로 끊어야 한다. 금융지주 회장의 선임절차 개선을 위해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도 손봐야 한다.

정답은 금투협 방식에 있다. 모든 금융관련 협회장은 3배수 이상의 후보를 놓고 회원사들이 직접 선출하도록 하는 게 맞다.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CEO도 마찬가지다. 금융지주회사 처럼 주주가 있는 상장사는 경우가 좀 다르다. 최종 법적 절차인 주총에 복수 후보를 추천하기는 곤란하다. 선진 외국의 사례를 봐도 상장사 CEO 후보는 대부분 단독이다.

사실 선진국 금융회사에선 이사회가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CEO 육성·추천에 심혈을 기울인다. 사외이사는 대부분 해당 업계의 경륜 있는 전직 CEO들이다. 업계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우리처럼 현직 CEO 눈치를 살피는 교수·관료 출신의 생계형 사외이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도 경륜 있고 존경받는 업계 원로들 중심으로 이사회가 꾸려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과도기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회추위를 확대해 광범한 주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대략 지분 0.5% 이상의 큰손 주주들에게 회추위 멤버 파견권을 줘 100명 정도로 회추위를 크게 구성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복수의 CEO 후보를 놓고 엄격한 검증을 거쳐 직접 투표를 통해 단일 후보를 만들어 낸다.

금투협이 200여개 회원사가 직접 모여 회장을 선출하는 것을 보면 100명이 참여하는 회추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번거로우면 회추위를 복수 후보를 찾는 1차 회추위와 단일 후보를 뽑는 2차 회추위로 나눠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앞장서 이런 전통을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김 회장은 셀프 연임 논란을 의식한 듯 “당국의 금융혁신과 지배구조 개선책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