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정래 + 만화가 박산하 = 만화 '태백산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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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권으로 완간된 ‘만화 태백산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가 조정래(左)씨와 만화가 박산하씨. 아래 그림은 주인공 염상진(左)과 김범우. [사진=김태성 기자]

'태백산맥'의 소설가 조정래(63)씨는 스스로 '글 감옥'에 갇혀 산다고 말한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밤 11시30분까지, 본인 말을 빌면 "먹고 쓰고 자고, 먹고 쓰고 자고"한다. 그러다 잠시 쉬는 틈이 생기면 집어드는 책이 있다. 바로 만화로 만들어진 '태백산맥'(더북컴퍼니)이다.

200만부 넘게 팔린 '진짜 사나이'의 만화가 박산하(39)가 2004년부터 심혈을 기울여 한 권 두 권 내놓기 시작했다. 이 만화책이 최근 10권으로 완간됐다. 소설의 첫 단행본이 나온 게 1986년이니 꼭 20년 만이다. 노란 케이스 속 10권의 만화책을 들고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 전통찻집으로 들어오는 박씨의 얼굴에는 막 태어난 손자를 할아버지에게 보이려는 아버지의 쑥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어서 와. 고생 많았어."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죽 펼쳐진 책들을 어루만지는 소설가의 손길이 꼭 할아버지의 그것이다. '태백산맥'은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부터 53년 7월 한국전쟁의 막바지까지를 배경으로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장대하면서도 촘촘하게 담아낸 대하소설. 80년대까지 반공이데올로기에 가려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사회주의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큰 반향과 논란을 불러왔다. 94년 이적성 시비로 제기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지난해 4월 검찰의 무혐의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차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아픈 역사를 그린 만큼 원작의 충격적 장면을 최대한 순화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염상구가 소화를 고문하다 유산시키는 장면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해시킬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만화책을 출간한 더북컴퍼니의 이형옥 대표도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폭력 묘사는 제외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더 민감한 대목은 이데올로기적 성향이다. 이 대표는 "사상적인 면에서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듣지 않기 위해 중학교 교과서와 비교 검토해가며 그 수준에 준해 풀어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조정래씨는 "나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라는 소설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글=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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