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애널 보고서 '눈치껏' 읽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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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증권사가 매일 내놓는 주식 투자 보고서(데일리 리포트)에 등장하는 문구들이다. 거의 암호문 수준이다. 법조문도 쉽게 쓰는 시대에 증권사 보고서만 유달리 어렵다. 이유는 뭘까.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도 못 맞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주가 전망은 어려운 일"이라며 "모호한 표현을 써야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만 본다"며 마구 쓰는 '그들만의 표현'때문에 주식시장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 투자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초보자일수록 증권사 보고서를 '참고서'로 삼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무분별한 영어 표현에다 한글 실력을 의심케 하는 지나치게 완곡한 표현 등은 초보 수준에선 아예 이해가 불가능하다. 느닷없이 '숲보다 나무를 보라'는데 도대체 뭔 말인지…. 보고서 행간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알아도 그만, 모르면 손해'=증권사별로 차이가 있지만 증권사들은 보통 기업 평가를 3~4단계로 나눠서 한다. 적극 매수(strong buy).매수(buy).시장수익률(marketperform).시장수익률 하회(underperform)등의 분류가 일반적이다. 용어만 보면 '시장수익률' 등급의 주식은 계속 갖고 있어도 괜찮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뜻은 '전망이 안 좋으니 팔라'는 것이다. 특히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시장수익률'로 낮추면 '즉각 매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15일 증권정보분석업체 FN가이드에 따르면 8~14일 발표된 국내 증권사의 기업 분석 보고서 235건 가운데 투자 의견이 '시장수익률 하회'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평가가 후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후한데도 또 모호한 표현으로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주는 이유는 뭘까.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분석 보고서가 기관투자가에 대한 증권사 영업 지원 수단으로 쓰이는 만큼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 힘들다"며 "정말 팔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시장수익률'이나 '보유'정도로 완화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 '모멘텀'은 언제부터 쓰였을까=증권사들이 우회적이고 완곡한 표현으로 기관이나 투자자들로부터 받을지 모르는 항의를 피해가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밸류에이션' '리레이팅'등의 영어 표현은 도대체 왜 쓰는 것일까.

마이에셋 권영건 대표는 "증권사 간 보고서 경쟁이 치열했던 1980년대엔 투자자뿐 아니라 애널리스트들도 정보가 부족해 외국 보고서를 참조하는 일이 많았다"며 "한 증권사에서 모멘텀이나 펀더멘털 등 영어식 표현을 사용하면 다른 데서 그대로 따라 쓰다 보니 영어투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우회적인 표현이 점점 더 늘어나는 데 대해서는 "호기로 강한 표현을 쓰다 항의나 소송을 당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표현이 점점 알쏭달쏭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증권사 신입 애널리스트 교육은 다분히 도제식으로 이뤄진다"며 "선배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과거 표현들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인들 눈에 생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미묘한 뉘앙스 전달에 효과적인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안혜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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