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중단 우려 테러 자제 인질극으로 이스라엘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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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전 의장인 아메드 사다트로 추정되는 인물이 14일 이스라엘 군에 체포돼 눈이 가린 채 끌려가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사다트를 포함한 PFLP 간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예리코의 교도소를 공격했다. [예리코 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장하는 교도소를 공격해 갇혀 있던 무장단체 지도자들을 강제로 데려갔다.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무차별 외국인 납치로 맞서고 있다.

◆ 교도소 습격은 하마스에 대한 경고 성격=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지도자들을 자국 내 구금시설에 가둘 목적으로 탱크와 헬기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있는 교도소를 급습, 뜻을 이뤘다. 하지만 이번 행동에 대해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은 '국가 테러'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가며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완전히 무시한 도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대행이 승인한 이번 군사작전의 성공을 놓고 이스라엘은 환영 분위기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에 초강경책으로 맞선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국가정책이기 때문이다. 자국의 관광.교통장관을 암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무장단체 지도자인 아메드 사다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의해 사면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번 군사작전은 테러 용의자만을 노린 게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장단체인 하마스 주도로 곧 출범할 자치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라난 가신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이번 작전은 테러에 관련한 우리의 입장을 향후 출범할 자치정부에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정국을 주도하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 총선 앞둔 이스라엘 집권당의 노림수=이번 교도소 습격은 올메르트 총리대행의 카디마당이 28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보수표를 모으기 위해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카디마당은 강경 리쿠드당에서 중도보수론자들이 탈당해 만든 정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대 집권당은 전통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팔레스타인과의 긴장을 높이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있는 아리엘 샤론 총리다. 그는 총선을 몇 달 앞둔 2000년 9월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제2차 인티파다(반점령 봉기)를 불러 왔다. 이 사건으로 샤론은 국민에게 '강단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 줬으며 그가 이끌던 리쿠드당은 총선에서 승리했다.

◆ 외국인 납치는 팔레스타인의 전술=최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지난해부터 외국인 납치를 새로운 전술로 사용하고 있다. 1월 초에도 영국인 등을 납치했고, 2월 초에는 이집트 무관을 납치했다 풀어줬다.

팔레스타인이 외국인 납치로 전술을 바꾼 것은 지난해 2월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에 휴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들은 자폭 공격이나 로켓탄 공격을 하는 대신 외국인 납치로 눈을 돌렸다. 무장 공격으로 휴전 선언을 어길 경우 이스라엘이 무차별 보복공격을 할 명분을 얻기 때문이다.

게다가 1월 총선에서 집권한 무장단체 하마스는 '테러단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산하 단체에 무장 공격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공격을 계속하다간 국제사회의 재정 지원이 끊겨 국정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정부를 인정하고 그간의 협정을 준수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경우 자치정부에 대한 지원을 없애거나 줄일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 결과 외국인 납치라는 새로운 전술이 전면에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14일 이스라엘군의 교도소 습격 직후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을 비롯한 무장단체들은 즉각 성명을 발표, "팔레스타인 영토를 떠나지 않는 외국인들을 보복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최소 9명 이상의 외국인 인질을 납치하고, 점령지 내 국제기구 및 미국과 영국 외교시설을 공격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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