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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제3세력」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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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느 총선 때처럼 13대 총 선을 앞두고 신당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다. 이번에도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만도 무려 17개나 된다.
그 중 몇 개는「공천용 철새정당」들이지만 그 밖의 몇몇 정당은 독특한 이념을 내세운 재야·운동권의 정당들로서 주목을 끌고 있다.
70년대의 민청학련 세대가 주축이 되어 있는 한겨레 민주당이나 80년대 이후 민중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당은 특히 관심의 대상이다. 이들 정당은 재야 운동권과 제도정치의 일원화 현상을 보여 온 우리 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그 정착여부가 관심을 끈다.
한겨레 민주당과 민중의 당은 지난해 6월 투쟁이후 70년대 또는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자들이 새로운 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면서 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
7O년대 이전의 운동권이라면 흔히 4·19세대, 6·3세대를 지칭했었다.
4·19세대는 특별한 이념적 동질성도 없었지만 그 후 각각 여야 정치권으로 흡수되고 정치의 흐름과 함께 굴절되어 왔다.
6·3세대도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학생시위를 주동했던 그룹들이지만 그들 사이에 이념적 연대성은 강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들도 각각 그들의 개인적 정치 야망에 따라 여야 정치권에 흡수됐다.
이종률 전 정무장관(서초 갑), 박범진 전 서울신문 부국장(양천 갑), 안성혁(서대문 을)씨 등이 각각 민정당 후보로 출마하고 김학준씨는 12대 민정당 의원을 지냈다. 당시 6·3을 주도한 김중태(중구), 현승일(성북 을)씨는 민주당 후보로 나서고 김도현씨는 한겨레 민주당으로 정치 재기를 시도했지만 피선거권 제약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야권에서도 김정강(구로 갑), 이원범(영등포 을), 김덕룡(서초 을)씨가 민주당으로 간 반면 김경재씨(강남 갑)등은 평민당, 전대열(도봉 을), 최수영(강서 을)씨 등은 한겨레 민주당으로 흩어졌다.
이들은 6·3사태 당시의 학생 운동가라는 동시대적 연관성 이외에는 서로를 묶는 이념의 끈이 없다. 그들의 정치 욕구만큼 다채롭고 다 변하는 이념의 변화를 보인 인사들도 적지 않다. 어떻게 보면 70년대 이전의 학생운동가 그룹은 와해됐다고도 볼 수 있다.
70, 80년대의 학생 운동권이 흩어지지 않고 집단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조직화·이념화된 학생운동 양상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의 시도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민주당이 스스로 분류한 공천 자 구성을 보면 △4·19세대=김재준(정주-정읍) △6·3세대=최수영(강서 을), 전대열(도봉 을), 송창달(은평 갑), 전한도(부산 금정) △교련 및 3선 개헌 반대=이대용(송파 갑), 정광섭(고양), 최정진(서초 을), 이기한(광명), 박영석(파주) △민청학련=제정구(종로), 유인태(노원 갑), 이현배(은평 을), 이강철(대구 수성) △긴급조치=장광근(동대문 갑), 김현식(성북 갑), 김부겸(동작 갑), 김영철(동작을), 원혜영(부천 남), 오원진(대전 동을), 이하원(온양 아산), 이윤기(대구 북), 서광태(구로 갑) △광주항쟁세대=백성조(부산 사하), 박경철(이리) △노동자 출신 운동가=오순부(인천서)씨 등으로 나누고 있다.
한겨레민주당 보다 좀더 현장 중심적이고 80년대 민중시대 학생운동 출신으로 구성된 민중의 당은 학생운동 출신 외에도 운수 노동자 대표 유대운(도봉 을), 대우자동차 파업을 주도한 송경평(인천 북을), 전 의창농민협회장 임수태(진해-의창), 전 남해농민협회장 김두관(남해-하동), 세입자 대책위원장 엄정남(관악 을)씨 등으로 구성해 기존의「인물」중심 구성에서 계층화·다양화 해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 민주당의 노선이「온건진보 적」인데 비해 민중의 당은 보다 급진적이다. △외세 배격과 민족 자주성 확립 △민중이 주체가 되는 자주·민주정부 수립 △민중 위주의 정책개발 △민족의 자주통일 등 학생운동의 구호가 그대로 기본정책으로 채택돼 좀더 전향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뜩이나 야권 분열에 대한 비판이 강한 판에 이들이 야권을 사분오열 시킨다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정당을 구성한 근본 이유는 기존의「보수야당」에 대한 대체 세력으로 등장하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민주당이나 민중의 당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원내에 진출하기보다 기존 정치의 틀을 비판하는 씨를 뿌리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두 김씨의 개인적 야망에 끌려 다니고 당리당략이나 좇는 구 야권을 철저히 패배시킴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정계 재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평민당이 철저히 패배해「야당 부재시대」같은 것이 온다면 그 후 야당에 대한 기대가 새로운 이념정당에 대한 기대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그와 같은 「야권의 패배」를 통해 정당 발전의 큰 계기가 이뤄진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겨레 민주당은 당대표 제정구씨를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시켜 이번 선거에서 기존보수야당들이 회피해 온 △경제적 불평등 문제 △조국통일 문제 △근로 대중 생존권 문제 등을 들고 나와 기존 여야를 싸잡아「기대할 것 없는 세력」으로 공격하기로 했으며 민중의 당 역시「보수 야합정치」를 폭로하기로 하고 3월 각 대학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개입, 서울대 등 각 대학 학생회를 장악하고 선거운동에 동원할 작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의「이념적 재편」이 이번 총 선을 통해 이뤄질지, 그들의 원내 진출이 이뤄질지는 이번 총 선의 또 다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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