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조그만 거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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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 국무원이 최근 한국과 직접 무역과 상호 인적교류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했다는 홍콩 발 보도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물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 대통령이 공약으로 삼았던 양국간 관계 개선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중공이 처한 국제 정치적 입장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때 현재로서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대한 접근으로 보인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공은 이보다 한 단계 발전된 상설 무역사무소의 상호 설치는 외교관계 수립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한국 쪽이 홀려 보낸 관계 정상화 신호에 대해 중공 지도층은 『한-중공간에는 쌍무 관계가 없으며 우리는 이점에 있어서 일관성을 지켜 왔다』고 말했었다. 이것은 중공이 대한관계에 세워 놓은 원칙인 것 같으며 최근 중공 국무원의 결정도 이 원칙에 따라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태도변화인 것 같다.
중공은 국내에서 개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정·경 분리 원칙을 지키려 안간힘을 써 왔다. 아직도 국내 보수파의 저항이 완강한 과도기에서 그와 같은 실용주의 노선은 현실적으로는 모순을 안고 있기는 해도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는 한반도 접근에 있어서 북한과는 정치적 유대를 지속시키는 반면, 한국과는 경제적 접근에 국한시키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공이 한국과 접근하면서 북한의 눈치를 살펴야 되는 이유는 비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소련과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념적 동류 성으로 묶인 북한을 떼 놓고 그 반대인 한국과 접근한다는 것은 국내개혁 노선의 핵심 논점에 속하는 정치적 변혁문제를 건드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 김일성 이후 시대가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한 그들의 정·경 분리 원칙이 바뀌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3각 관계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에서 한국도 실용적으로 중공의 미진하기는 하나 그런대로 성의라고 평가되는 이번 결정에 응대해야 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지난해 한신 공 상호 교역량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 액수는 2년 전에 비해서나 북한과의 교역량(약 5억 달러) 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 확실하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공은 점점 높아가고 있는 구미로부터의 통상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장다변화의 새 지평을 열어 주고 있다.
중공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집약도가 높고 기술수준이 낮은 산업체제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체제로 전환,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소재와 중간재 및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같은 상호간의 필요성은 서로간의 경제적 관계를 계속 확대하게 될 것이며 양의 축적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일반 원리에 따라 언젠가는 정치적 관계에까지 변화가 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 전망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공의 조그만 조치는 거보 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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