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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졸속 단일팀, 팀워크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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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언니 같은 감독’ 세라 머리(30). 캐나다 출신의 그는 4년간 선수들과 함께 뒹굴면서 희한한 훈련도 자주 시켜왔다. 그중 하나가 ‘팬터마임 게임’. 한 선수가 종이에 쓴 내용을 눈빛·몸짓으로 나타내면 동료들이 맞혀야 한다. 시속 200㎞의 퍽이 난무하는 격렬한 경기 와중에 순간의 제스처만으로 소통하게 하려는 거다.

촉박한 일정으로 손발도 못 맞춰 #일본에도 지면 뒷감당 어쩔 건가

단일팀 논란을 보노라면 정부의 무심함에 기가 찬다. 당국은 넓게는 스포츠, 좁게는 아이스하키의 특별함을 헤아리지 않았다. 최대의 실수는 남북의 정예로 단일팀을 꾸리면 세질 거란 착각이다. “기량 좋은 북한 선수를 추가해서라도 승리하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 있다고 한다”는 이낙연 총리의 주장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런 인식은 세 번의 단일팀이 죄다 성공한 탓일 수 있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복식조는 무적이라던 중국을 꺾고 우승해 큰 감동을 낳았다. 같은 해 6월 포르투갈 청소년 축구대회도 그만하면 성공이었다.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까지 올랐다. 2011년 카타르에서 열린 피스앤스포츠컵 탁구대회에도 남자팀은 우승, 여자팀은 준우승했다.

과거에 그랬다고 이번에도 대박을 확신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종목의 특성부터 완전히 다르다. 세 번의 단일팀 중 두 번이 탁구였다. 탁구는 기본적으로 개인경기다. 복식조차 한 번씩 잘 넘기면 된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는 어느 종목보다 손발이 맞아야 한다. 팀당 6명이 뛰는 아이스하키는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해 22명이 돌아가며 투입된다. 격렬한 몸싸움으로 반칙 판정을 받은 선수는 한동안 퇴장해야 한다. 시시각각 상황에 맞게 역할과 전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터라 투입될 북한 선수들이 짧은 시간에 각 위치에 맞는 전략을 익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역대 대표팀 감독 몇몇에게 단일팀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을 물었다. 그랬더니 “팀워크”라는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선수들이 돌처럼 뭉쳐 팀워크를 발휘해야 이길 수 있다. 자신에게 슈팅 기회가 왔음에도 팀 승리를 위해 더 나은 위치의 동료에게 패스하려면 절대적 신뢰가 필요하다. 이런 팀워크가 작동하려면 서로를 믿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스킨십이 없어선 안 된다.

팀워크가 중요한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성공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91년에는 4개월 전 단일팀 결성이 합의됐고 남북을 오가는 합동훈련도 경기 40여 일 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길어야 2주 남짓이다. 자칫하면 단일팀은 손발도 못 맞춘 채 스웨덴(세계랭킹 5위), 스위스(6위), 일본(9위)과 맞붙어야 한다. 죄다 한국(22위)보다 한 수 위다. 한국은 일본만이라도 꺾겠다는 각오지만 팀워크 없이는 이길 수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저서 『사랑할 힘』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 세상에 진지한 무지와 양심적인 어리석음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고. 일본에도 지면 당국은 “단일팀 구성에만 급급해 일을 망쳤다”는 비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물론 단일팀 합의를 이제 와 뒤집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최선의 성과를 거두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첫째, 남북 선수 모두가 이 상황을 진심으로 납득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팀워크가 생길 리 없다. 가뜩이나 감성이 예민한 여자 선수들이라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그런 큰일이 없다. 둘째, 머리 감독의 바람대로 기왕 꾸릴 단일팀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만나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팀워크라도 다질 수 있지 않겠나.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