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한국 IT 강국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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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사이에 한국의 전산망이 멍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산 담당자들은 "한국 전산망은 어디를 가도 뒤에선 다 저 꼴"이라고 입을 모은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뒤로는 늘 장애가 생기고 복구하느라 실무자만 밤을 새우는 일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서버는 최고 성능의 제품을 아낌없이 사들이면서도 소프트웨어 설계는 싼 곳에만 맡긴다. 심할 경우 1000만원을 들여도 몇 단계 하청을 주다 보면 실제 프로그래머들은 200만~300만원을 받고 작업하기 일쑤다. 미국의 경우 전산망 보안 담당자는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동등하고 비상 상황이 생기면 오히려 강력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한국의 전산망 보안 전문가는 "평소에는 천덕꾸러기, 사고가 나면 총알받이 신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은행 전산담당자는 금융전산망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은행이나 자신의 이름이 나갈 경우 경영진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보다 담당자를 문책하기 십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전산 담당자들은 "언제 큰 혼란이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알맹이는 곪아터진 것이 '무늬만 IT 강국' 한국의 현실이다.

김창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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