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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광풍과 역대급 청년 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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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국제부장

이상렬 국제부장

암호화폐 광풍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이 사태의 본질은 블록체인 기술을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확산은 전 세계적 현상인데, 왜 유독 한국의 2030세대들이 암호화폐에 빠져들어 몸살을 앓고 있는가.

취업난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암호화폐 광풍의 배경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보다 양질의 일자리 대책 절실

암호화폐에 뛰어든 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암호화폐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외친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고, 저축으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진 현실에서 암호화폐는 돈 없고 빽 없는 ‘흙수저’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세 보증금과 등록금까지 털어 넣은 암호화폐의 가격 급락에 그들은 또다시 무너진다. 나는 청년들의 꿈을 집어삼킨 암호화폐 바람이 역대급 청년 실업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청년 실업률은 9.9%.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중산층이 되는 꿈은 일자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수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마쳐도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 게 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지난 1년간 한국 경제가 만들어낸 일자리는 25만3000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경제는 지난해 일자리 200만개를 추가했다. 일자리는 넘쳐나고, 기업들은 혹시라도 직원들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해 하며 임금을 올려주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 호황을 오직 트럼프 대통령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미국의 경기 개선은 전임 오바마 정부 때부터 계속돼오던 것이다. 무엇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해도 3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1%로 낮춰주며 1조5000억 달러(약 1600조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 효과를 과소평가할 것도 아니다. 대규모 감세가 기업의 투자의욕에 불을 붙이고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미국에서 사업하길 원하는 기업이라면 미국 땅 안에서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팔 비틀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한국 재계의 간판선수인 삼성과 LG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세금을 피해 해외에 현금을 쌓아두고 미국 내 공장이 없는 걸로 유명한 애플도 해외에 보유해온 2450억 달러(약 260조원)를 미국 안으로 들여오고, 미국 땅에 일자리 2만 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감세가 트럼프 경제정책의 아이콘이라면,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축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장은 정부의 기대와 정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멀쩡한 공장 문을 닫고, 눈물을 흘리며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다. 2014년 시간당 521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올해 7530원으로 오른다. 44.5%의 인상률은 세계적이다. 한국에서 이 정도 임금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과 자영업주는 손 꼽을 정도다.

정부 대책은 영세업체에 대한 최저임금 지원이다. 최근 이런 정책을 알리러 분식점을 찾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 실장이 종업원에게서 “장사가 잘돼야 임금을 받아도 마음이 편하고 떳떳하다. 임금만 올라가면 뭐하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현실 경제에 관한 한 그 종업원이 장 실장보다 더 통찰력 있다고 본다. 그의 말은 업주와 종업원이 파이를 갖고 대립하는 남남이 아니라는 점, 가게의 성공을 위해 함께 분투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것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란 그렇게 서로 연결돼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책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곳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들이 즐겨가던 동네 치킨집도, 분식점도, 편의점도 더욱 불황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는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파이를 덜어준다고 굴러가지 않는다. 국민들 소득을 제대로 늘리려면 시장에 맞는 일자리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암호화폐 광풍도 잡을 수 있다.

이상렬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