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력 발휘해 破局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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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와 정치권의 대응방식은 정치력의 빈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타협과 협상을 위해 노력하는 곳은 한 곳도 없고, 각자 조직의 논리를 따라 파국으로 치닫는 강성 행위만 할 뿐이다.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는 기차 같다.

해임안이 오늘 국회에서 통과됐을 경우 어떤 후유증이 올지는 너무나 뻔하다.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당장 내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과 3당 대표 등의 '5자회동'도 불투명해진다.

야당은 "국회를 무시한다"며 대정부 투쟁을 가속화할 것이고, 청와대는 "거대 야당의 횡포"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런 감정싸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그 와중에 짜증나고 피곤해지는 것은 국민이다.

우리는 이미 한총련의 미군부대 장갑차 점거 시위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국회 차원에서 행자부 장관 해임안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해임안 처리가 원내 제1당으로서의 적절한 처신인지 심사숙고해주기 바란다.

민주당도 여당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신.구주류 싸움에 정신팔려 해임안 문제를 외면해온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 여당이 고작 청와대를 향해 거부권 행사나 주문하는 행태는 정말 너무 한심스럽다.

정부도 야당이 해임안 발의 의사를 표명한 게 언제인데 손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야당에도 물러날 명분을 주는 것이 정치다. 또 경찰을 문책했다고 하면서 그 최고수위가 기껏 감봉 1개월이니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설득력이 있겠는가.

우리 사회 갈등의 최후 조정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청와대와 국회다. 그런데 자신들의 입장만 강변하며 정면충돌도 불사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책임유기다.

이래가지고서야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건설에 반대하는 부안 군민과 조직 이기주의로 치닫는 화물연대를 어떻게 나무라겠는가. 청와대와 정치권은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정치력과 협상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