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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정치보복 질긴 악연의 끝 … 특활비가 변수 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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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03면

[리뷰 & 프리뷰] 현직 vs 전전직 대통령의 충돌, 그 속살

현 정권은 전(前) 정권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권교체냐 재창출이냐에 따라 공개적으로 갈등하느냐, 비공개로 하느냐만 달라질 뿐이다.

9년 전 노 전 대통령 죽음서 비롯 #문 대통령 진영 “정치적 타살” #집권 후 감사부터 전방위 수사 #MB 측은 “포토라인 세우려는 것”

2018년 정국에선 더 나아가 갈등이 전전(前前) 대통령으로까지 번졌다. 검찰의 칼날이 조여가자 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17시간 간격으로 공개적으로 맞서는 상황까지 갔다. 이례적 수위다. 갈등의 뿌리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2009년 5월29일 항의 받았던 노 전 대통령 조문

2009년 5월 29일 오전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식.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오른쪽)와 형 건평씨 사이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다. 왼쪽은 아들 건호씨.

2009년 5월 29일 오전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식.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오른쪽)와 형 건평씨 사이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다. 왼쪽은 아들 건호씨.

당일 경복궁 앞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헌화한 후의 모습.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고 외치다 끌려나갔다.

당일 경복궁 앞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헌화한 후의 모습.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고 외치다 끌려나갔다.

#2 그 후 9년 기침 연발한 반박 회견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7일 새벽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7일 새벽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했다. [중앙포토]

이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했다. [중앙포토]

1. 보복 논란의 시작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의혹 끝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그로부터 24일째인 같은 달 23일 사저 인근에서 투신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이 전 대통령 내외를 향해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정치보복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하느냐”고 외치다가 끌려나갔다. 장례집행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게 “조문 오신 분에게 예의가 아니게 됐다”고 사과했다. 8년이 흐른 지금 백 의원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됐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발간한 저서 『운명』에서 “지금도 그분의 유서를 내 수첩에 갖고 다닌다”며 “노 대통령도 우리도, (이명박 정권 퇴진)촛불시위 후속 대응이 정치 보복이고 보복의 칼끝이 우리를 향하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이라고 여긴 셈이다.

2. 잠복기

지난해 대선까지 두 사람이 직접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인식과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들이 있긴 했다.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며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대선 국면에서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누구라도 그 사람의 의지를 선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겠지만 결국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라고 하자 문 대통령이 한 반박이다. 문 대통령은 안 지사에게 “분노가 빠져 있다”고도 했다. 그는 TV토론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격하게 반응하곤 했다.

3. 반격

문 대통령은 집권한 후 사정라인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백원우 전 의원을 기용했다. 또 집권한 후 10여 일 만에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를 지시했다. 4대강 사업은 앞서 세 차례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두 차례, 박근혜 정부에서 한 차례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검찰 수사망이 이 전 대통령을 조여 갔다. 크게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과 정치 관여 의혹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자란 의혹이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관련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등 세 갈래였다. 그러다 18일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간 비밀군사협정 체결 의혹도 추가됐다.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윤석열)이 처음 시도한 건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관계자들에게 적용한 군형법과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혐의의 공모자로 엮는 방식이었다. 이 길은 그러나 지난해 11월 법원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어주면서 막혔다. 이 전 대통령에 이르는 길목인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다스 수사는 두 곳에서 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100억원 이상의 다스 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은 동부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문찬석)이, 대통령 재임 시절 BBK투자자문에 투자한 돈 140억원을 다스를 거쳐 돌려받았다는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가 나눠 맡고 있다. 동부지검이 맡은 수사는 공소 시효(2월 21일)에 쫓기고 있다.

검찰이 활로를 찾은 건 청와대가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쓰는 관행에 뇌물 혐의를 적용하면서부터다. 박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하는데 성공하면서 이 방법을 그대로 이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오랜 ‘집사’인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민정비서관을 각각 4억원과 5000만원씩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나아가 “2011년 10월 국정원 특활비를 바꿔 10만 달러(1억여원 ) 정도는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진술은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1996년부터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한 김 전 비서관은 한때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

4. 이(李)의 반격

최근까지 이 전 대통령 측은 저강도로 대응했다. 주로 측근들이 나섰다. 그러나 국정원 특활비 수사가 진행되고 김희중 전 부속실장의 진술이 보도된 이후엔 공개 반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나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도 거론했다. 정치 보복이란 주장이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18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 사람들(문 대통령 진영)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있다. ‘MB(이명박) 두고 봐라. 그냥 안 간다. 반드시 갚아줄 거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노 전 대통령이 당했던 것처럼 MB(이 전 대통령)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고 말겠다는 기획수사”라고 했다.

5. 앞으론 어떻게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입장 발표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했던 자신을 향해 정치보복을 운운한 건 부당하다면서다. 대통령의 분노가 “사실상 수사 지시”란 비판을 받을 수 있는데도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충돌의 양상은 청와대의 신임이 깊은 윤석열 지검장에게 달렸다. 일단 다스 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이 “다스 설립에 이 전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김성우 전 사장 등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범죄 입증에 필요한 ‘스모킹 건’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에 비해 국정원 특활비는 ‘포토라인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듯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김희중 전 부속실장은 검찰에서 진술했을 뿐만 아니라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특활비를 받는 게 과거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눈높이가 달라진 국민이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분은 그분(이 전 대통령)밖에 없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실제 이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할 수 있을까. 익명을 요청한 검찰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건의 최하부 관련자들을 구속한 뒤 이들의 자백을 토대로 ‘머리’를 공모공동정범으로 구속 기소하는 게 그동안 윤석열 팀이 보여준 수사 기법”이라며 “김 전 부속실장의 자백이 있는 만큼 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정애·임장혁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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