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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불가리아(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도 제일 번화한 거리 비토샤에 있는 중앙행정관서 앞마당엔 20∼30대의 젊은 남자들이 줄을 지어있다.
개인사업영업허가를 얻어 돈을 벌겠다는 젊은이들이다.
불가리아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개인사업허가를 얻으려하는 것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곳 미디어들이 소련 등 공산주의국가 소식보다는 이웃인 서구국가들의 풍요를 더 자주 전하고 이 풍요가 서구의 자유기업정신에 있다는 소식이 이들을 매료했고 더구나 86년부터 정부가 자유영업을 허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
개인영업이 허용되는 분야는 식당·이발소·가전제품 수리업·소규모 식품점·개인택시 등. 개인영업이 허용되는 분야도 적고 개인자본이 형성되지 않아 개인영업을 시작한 사람들의 사업규모는 크지 않으나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젊은이들을 행정창구로 몰아넣고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희망자가 많은 만큼 당국의 심사 또한 까다로워 희망자는 많아도 실제 개인영업허가를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려면 최소 5년의 무사고 운전경력과 구입한지 2년 이내의 깨끗한 차를 갖고있어야 한다.
이발소나 식당을 경영하려면 해당분야의 자격을 갖춰야하고 국영기업에서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요구된다.
시내중심 가에서 볼 수 있는 개인영업소는 구두닦이와 시계수리점 등 아주 좁은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업종.
구두닦이는 켤레 당 50스토팅카(2백50원)를 받고 외국관광객들은 팁까지 1레바(5백원)를 주고 있어 하루 20켤레를 닦으면 10년 경력의 공장근로자나 웬만한 사무직 근로자보다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이곳에선 매력 있는 개인영업종목에 속한다.
개인영업을 한다고 꼭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2개월 전 3천 레바를 투자, 10여 평 규모의 식당을 개업한「페레르코프」씨(34)형제는 월1백50레바의 임대료도 건지기 어렵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날씨가 풀러 관광객과 손님들이 늘어나길 고대하고 있다.
소피아의 노천시장은 노인이나 아낙네들이 벌이는 또 다른 개인영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피아의 변두리 약1㎞의 기리 양쪽엔 1평도 채 안 되는 점포들과 좌판들이 쭉 늘어서 채소·과일·빵·옷가지·허드레 가정용품을 팔고 있다.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이곳에선 자신이 농촌에서 직접 생산한 푸성귀며 손으로 엮어 만든 빗자루, 손뜨개질로 만든 레이스와 스웨터, 집에서 구운 과자·빵을 들고 나온 농부와 아낙네들이 이들 좌판의 주인들.
시금치를 팔고있는「치페르코프」라는 60대 노인은 좌판 자릿세로 하루 5레바를 시청에 내고 매상의 10%를 세금으로 제하면 한 달에 4백∼5백 레바를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개인영업을 시작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성 중엔 장관·장성·국영기업체장 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장이나 단순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회의 수요변화에 따라 컴퓨터 등 기술분야, 의상디자인·관광가이드 등의 직종으로 진출하는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개방의 물결을 타고 지난해 가을 처음 얼린 미스 불가리아 선발대회엔 전국에서 6백90명의 미녀들이 참가, 몸매를 겨루어 화제가 되었고, 얼마전 한 기성복메이커가 처음으로 공모한 모델선발에 2천여 명의 걺은 여성들이 응모했다는 기사가 9일자 주간 소피아뉴스 지에 크게 보도되고 있다. 여성들의 역할이 점차 개방적이고 다양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즐비한 노점상들 사이에 어두운 눈과 손동작이 둔한 노인이 복권을 팔고 있는 것이 기자의 눈을 끈다. 공산국가에서 무슨 복권이냐 싶어 물어보니 세입을 늘리기 위해 정부주관으로 공식적으로 팔고 있다는 대답이다.
세입을 늘리기 위해 복권제도를 실시한 것이나 개인기업의 확대, 국영기업의 자율경영제도도입, 또한 북부 다뉴브강 연안의 2개 도시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정한 것은 경제개혁이 공산주의방식으로만은 어렵고 서구식의 경제운용이나 서구자본의 지원 없이는 어렵다는 각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불가리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7천 달러, 연간 대외교역량이 3백억 달러, 외채50억 달러라고 정부자료는 밝혀 안정된 산업국이란 인상을 주고 있으나 통계자체가 종잡을 수 없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교역량을 예로 보면 39년보다 85년 현재 수출은 85배, 수입은 43배가 늘었다고 하나 기준연도나 85년의 액수가 밝혀지지 않아 헤아려볼 길이 없다.
최근 공산주의 식의 국영체제에 사기업적 경제요소를 가미한 경제개혁이 불가리아의 경제적 성공을 약속하고 이 같은 성공이 불가리아뿐 아니라 동구의 이데올로기적 변화까지도 가져올지 속단키는 어렵지만, 이 나라가 변화의 몸부림 속에 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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