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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모른 척, 금융권은 쉬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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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 은행 전산 부서 관계자는 "서버 장애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금융 서비스 수요가 많은 월말에는 내부 보안 규정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한 직원이 이를 어겼다는 사실만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무역상 김준형(42.가명)씨는 처음 거래를 튼 지방 중소기업에 이 은행의 인터넷뱅킹으로 납품 대금을 부치려다 낭패를 봤다. 송금을 하지 못해 중소기업이 물품을 제때 보내지 않는 바람에 김씨는 결국 해외 바이어가 요구한 납기일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국민 다섯 사람 중 두 사람(2000만 명)이 이용하고 하루 28조원(1700만 건)이 드나드는 국가 금융전산망이 부실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3년간 금융기관이 공식 발표한 전산망 중단 사고만 11건에 달한다. 그러나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십 분의 장애로 수천 건에서 많게는 10여만 건의 거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한 달에도 두세 차례 일어난다. 하지만 정부는 '모른 척'하고, 금융계는 '쉬쉬'한다고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은행 전산 관계자는 "마감 후 금융결제원의 데이터를 받아 밤새 온라인망을 복구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김인식 IT팀장은 "대부분 원인을 찾지 못해 은행은 금융결제원에, 금융결제원은 은행에 책임을 돌린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9일 시작될 판교 아파트 청약을 앞두고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금융망의 취약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청약은 인터넷 신청이 기본이다. 수백만 명이 몰릴 청약과정에서 금융망이 못 버텨 멈추거나 해커 침입으로 장애를 일으키면 대혼란이 일 것이 불보듯 뻔하다. 특히 전산망의 핵심인 보안에 대한 대책이 미덥지 못하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해커 침입 시도는 연간 30만 건에 달한다. 세계적인 보안회사 시만텍이 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180개국에서 일어난 해킹 사고 중 금융 부문이 2만2000건이나 됐다. 둘째였던 교육 부문(9000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망의 보안 수준은 한심할 정도다. 핵심기관인 금융결제원의 경우 관련 인력은 관리직까지 포함해야 고작 30명이다. 그나마 24시간 3교대 근무라 실시간으로 일하는 전산 엔지니어는 많아야 5명이다.

미국에선 씨티은행의 경우 본사에만 보안 전담 인력이 300명을 넘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융 데이터를 별도 컴퓨터에 저장하는 백업시스템도 금융결제원은 현금 인출 등 10여 개 서비스에서 공인인증서 등 3개 데이터만 저장하는 수준이다.

◆ 국가 금융 전산망=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들의 전산망을 연결한 네트워크 및 서버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PC, 은행 단말기 등으로 금융기관 간 온라인 결제를 할 수 있다.

김창우.이원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3월 14일자 1면 '대한민국 금융전산망 툭하면 수리 중' 기사에 대해 금융결제원은 "최근 3년간 발생한 11건의 전산망 중단 사고는 개별 은행의 차세대 전산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성능 개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장애"라며 "금융결제원의 장애로 인해 전체 은행공동전산망이 중단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결제원은 "다만 특정 은행에서 발생한 전산 장애 때문에 해당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 사이에 주고 받는 거래요청 명세가 금융결제원의 서버에 잠시 누적돼 있다가 장애 복구 후 처리되는 경우는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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