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들어온 해외 기업들 외국 '대리인' 될까 우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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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13일자에서 "(경제 애국주의는) 이미 상호 의존도가 높아진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할 경우 미국은 금리 인상과 경제성장 둔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미국이 해외투자에 대해 계속 '노'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해외 부채가 많은 데다 고용 창출을 위해 해외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얼마 전 유럽의 경제 애국주의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유럽은 지금 경쟁력을 갖춘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력 없는 국가들이 뒤섞인 대륙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에 따르면 세계 100대 경제주체 가운데 국가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머드급 기업이다.

어지간한 국가보다 덩치가 더 커진 기업들이 국가의 틀 안에 묶여 있으려 할 리 없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독일계 스포츠용품 기업 아디다스는 수입의 9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전체 직원의 80%를 해외에서 고용하고 있다. '독일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자연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30대 상장기업 중 23곳을 외국인이 지배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자국 경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에너지 회사 에온의 스페인 기업 엔데사 인수를 막은 스페인을 예로 들며 "(유럽 국가의) 정부가 경제 분야에서 '국내 챔피언'만을 양산하려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선 미국 기업 펩시코가 프랑스 식품회사 다농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온 정치권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잡지는 "유럽의 자국 산업 보호 뒤에는 외국 기업이 외국 정부의 대리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철강.금융 등 핵심 전략산업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진 것도 그래서라는 것이다.

미국은 일단 중국.아랍권 등 특정 국가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합병을 선별적으로 제한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저가 수입품,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는 것은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외국에 넘어가는 것을 꺼리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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