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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모일신」 애썼지만 인물난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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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이 29일 1차 공천자 1백 87명을 확정, 사실상 공천 작업을 거의 매듭지었다.
당초 민주당은 이번 공천을 통해 지난 대통령 선거 실패의 후유증과 야권통합 실패에 따른 실추된 야당 을 만회하기 위해 과감하게 새 인물을 발탁, 야당의 체질 개선과 면모 일신을 보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었다.
그런 목표가 이번 공천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반영된 긍정적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야당의 극심한 인물 고갈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공천자중 현·전 의원을 제외한 거의 절반이 신인이지만 야당의 새 맥을 구성하기에는 흡족하지가 못하다.
명색 제 1 야당인 민주당이 상당한 지역에서 국회의원 후보 감을 못 냈거나 마땅한 인물이 없어 엉뚱한 지역인사를 「짜 집기」식으로 밀어 넣은 경우가 적지 않고 그나마 공천자 중에서도 야당 판을 쫓아다니기만 한 「정당인 출신」의 무명인사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야권분열에 따른 야권인사의 반분현상과 민주·평민 양당간의 지역적 할거현상이 이런 인재 빈곤을 한층 부채질한 사실을 도외시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선거구제에서 당락이 불명하다는 사실로 인해 상당한 인사들이 참여를 꺼렸다는 점과 우리정치 풍토에 고질화되어 있는 야당 기피 풍조의 탓도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이번 공천을 통해 「거듭 태어나는 환골탈태의 체질개선」이란 목표에는 미흡했으나 그런 방향으로 접근하려 애쓴 흔적만은 보이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현역의원 재 공천」이란 야당의 오랜 불문율을 깨뜨렸다. 이번 공천에선 야당사상 유례없이 정치노선을 문제삼아 현역의원을 6명씩이나 탈락시켰다.
그것도 선거구가 92개에서 2·4배나 대폭 늘어난 2백 24개이고 현역의원이라고 해봐야 지역구·전국구 합쳐 52명(공천 신청자는 그중 48명)밖에 안 되는데도 지역구를 신청한 현역의원 6명을 잘라냈다.
탈락의원들은 직선제 개헌투쟁 당시 여당과 궤를 같이해 내각제를 주장했던 신보수회 출신 서종렬(영일-울릉)·이건일(해운대)·한석봉(부산 동)·신병렬(울산 남) 의원과 두 김씨에게 도전하고 분당에 반대했던 이른바 정풍파에 속했던 6선의 박한상(영등포 갑)·4선의 박해충(노원 갑) 의원 등이다.
이들이 공천 탈락에 반발, 무소속 등으로 총선에 나설 것이 명약관화한데도 이를 탈락시키기로 한 것은 그런 대로 체질개선을 위한 하나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현역탈락의 배경에는 평민당과의 선명 경쟁을 고려한 측면도 있고 민주당이 유리한 지역에 과도하게 몰린 공천 경합 탓도 있다.
또 일부 인사에게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흔적도 없지는 않으나 야당 공천사에 가위 「이변」이라 할 만하다.
체질개선을 위한 자구책은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참신한 40대 교수·변호사 등 전문인들의 다수 영입으로 나타났다.
극렬한 투쟁가는 아니나 인권변호사로 일해온 강신옥(마포 을)·장석화(영등포 갑)·이인제(안양 갑)·노무현(부산 동)·김광일(부산 중)씨 등 변호사 9명, 직선제개헌 서명운동에 앞장섰던 노승우 외대 교수(동대문 갑)·현승일 국민대 교수(성북 을)·박종철 동국대 교수(성동 을) 등 교수 10명이 새로 들어온 것은 야당으로서는 큰 수확이다.
성만현 전 럭키금성 이사(대구 남)·정진일 화승 이사(안산)·김경두 전경련 차장(대천-보령) 등 재계 전문인이나 회사대표 22명도 이 부류에 포함된다.
또 4·19세대 및 6·3세대의 운동권 중 김중태(서울 중)·김덕룡(서초 을)·김병태(송파 을)·서훈(대구 서갑)·김종배(구로 을)씨 등 10여 명이 공천되어 야당성을 보강했다.
그러나 역시 주류는 야당을 오래한 당료들. 주로 40대 인사들인 이원종(강서 갑)·탁형춘(양천 을)·임광순(관악 갑)·장문영(성남 갑)씨 등이다.
김영삼 전 총재와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해온 최기선(부천 남)·임정규(도봉 을)씨 등 비서·특보 7명도 이 범주에 속한다.
연령별로는 30대 16명, 40대 74명, 50대 80명, 60대 19명의 분포가 되어 40, 50대가 주류로 노·장·청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공천과정에서 과경합 또는 인재난, 그리고 공천위원 및 일부 중진들의 강한 입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몇몇 사람이 여러 지역을 전전한 것이나 공천 원칙상 문제점으로 지적된 인사들 수명이 공천을 받아 물의를 자아낸 것은 비판받을 소지다. 특히 공천작업이 밀실작업으로 이루어진데다 김영삼 전 총재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공천에서 △취약지구인 호남지역에서 오랫동안 야당을 했거나 장래의 유망주로 기대되는 인사 이외에는 무리하게 후보를 공천치 않기로 했고(15개 지역 정도)△민주·평민당 양쪽에 다같이 공천 신청한 기회주의자들은 배제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거에서 서울과 부산을 양대 거점으로 해서 야당회생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전략 하에서 서울 종로의 김명윤 총재대행, 부산서의 김영삼 전 총재를 쌍축으로 해서 극렬 투쟁형보다는 온건보수 내지는 진보성향의 전문직업인을 대거 포진시킨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는 제 1 야당을 놓고 피나게 경쟁해야할 상대인 평민당의 공천경향이 재야 투사형으로 흐르고 있는 점과 대비시켜 6·29선언과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조성되고 있는 안정 지향적 여론의 흐름을 타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서울과 부산을 진원지로해서 「온건한 견제세력」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제 1 야당 바람을 일으켜 인근지역으로 확산시킨다는 구도가 엿보인다.
이런 「바람 구도」가 주효해 제 1 야당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있을 평민당의 공천내용 등에 따라 비교될 것이나 기본적으로는 새 야당 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성향이 어떻게 나타날지가 가장 문제일 것이다.<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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