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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공천은 이런 사람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통합에 실패한 민주·평민당과 공화당, 그밖에 신생야당들도 민정당에 이어 공천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분열된 상태인데다 조직·자금력에 있어서도 현저한 열세인 야당들이 강력한 민정당과 소선거구에서 맞싸워 과연 바람직한 수준의 견제세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은 만큼 야당들이 어떤 인물들을 공천하는지에 대해 관심도 크다.
공천작업에 임하고 있는 야당 스스로도 이번 선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현재 안고 있는 내부 인력만으로는 참패를 면하기 어렵고 야당이 기대하는 바람을 일으킬 수도 없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분열로 인한 대통령 선거의 실패책임, 거듭된 통합실패로 인한 국민의 실망감과 분노, 통합협상 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난 정치력의 한계, 이런 여러 요인들로 말미암아 현재의 야당으로서는 총선에서 여당과 제대로 게임이 안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제한된 야권인물들이 분열해 서로 경쟁하는 판국이어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올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평민당이 참신한 외부인사를 대거 영입하고 내부인물들을 상당수 공천에서 배제키로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벌써 몇몇 지역구에서는 영입이 이뤄지는 것을 볼수 있고 이런 움직임과 함께 일부 노장정치인의 은퇴 또는 불출마 선언도 나와 야권의 세대교체가 예상보다 빨리진척되는 감을 주고 있다.
우리는 야당이 비록 통합에 실패해 국민을 실망시켰지만 이번 공천작업을 계기로 대담한 자기혁신을 해야 살길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우리 야당이 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음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보스의 가부장적 당지배, 전근대적인 당운영, 정치꾼으로 혹평되는 저질성의 문제, 식견있는 인물의 빈곤 등 야당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야당의 이런 모습은 오랜세월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과의 가열한 투쟁에서 혹독한 탄압과 고초를 겪은데 주로 원인이 있지만 이제와서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나갈수는 없는 일이다. 과감한 도태와 과감한 수혈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야당의 충원은 주로 독재적 권력과의 투쟁효울성이란 단일기준으로 이뤄져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격, 자질, 학식 이런 요소보다는 정통성없는 권력에 저항해서 버티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야당을 형성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목청크고 연설잘하는 사람, 감옥을 자주 들락거린 사람이 야당세력의 주류를 이루게 된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집권세력이 민주화를 표방하는 이상 야당이 투쟁 한길로만 달릴수는 없게 됐다. 집권세력과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고 정책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수 있다. 여전히 민주화투쟁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민주화 방법론 경쟁의 양상으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
독재권력과의 투쟁에서는 301조가 뭔지, 유전공학이 어떤건지 몰라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어느 쪽이 더 많이 아느냐의 경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사회의 발전, 변화속도는 빠르다. 하루가 다르게 전문화, 고도화, 다양화해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정치환경을 맞아 야당이 적응하고 리드해 나가자면 과감한 체질 개선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번 공천이 좋은 기회일 것으로 믿는다. 각 야당이 이른바 지방당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도 공천을 통한 자기혁신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처럼 인맥부식 공천, 당장악력강화 공천, 지분확대 공천이 재연돼서는 안될 것이다. 공천을 통해 야권에 청신한 생기가 돌기를 기대하면서 공천결과를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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