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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거지 서로 비키고 수도권에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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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야권통합에 실패한 야당들은 총선고지로 각개 약진을 시작해 22일 공천신청을 마감했다.
그러나 야권통합 실패에 따른 야당끼리의 끝없는 소모전이 예견되어 민정당만 어부지리를 얻지 않을까 하는 비관론이 팽배한 실정이다.
공천신청 결과 중립적인 서울중심의 수도권은 예상대로 민주·평민당 후보들이 몰려 이마가 터지는 싸움을 할 전망이다. 그러나 상대방 본거지인 영·호남엔 서로 공천신청 조차 안해 동패끼리 경합에 나서고 있다.
전국 2백24개 지역구 가운데 민주당은 광주 광산 등 호남 9개 지역구를 비롯, 13개 지역구에서, 평민당은 마산 등 경남 14개를 비롯, 54개 지역구에서 각각 공천신청자를 못 냈다.
가뜩이나 인재 빈곤을 절감하는 상황에 야권끼리 지역을 편갈라 싸우는 판이니 신청자가 없는 현상만 탓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민주·평민 눈치를 보던 무소속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키로 한데다가 뿌리가 다른 야당인 공화당과 재야 신진정치세력인 한겨레당(가칭)·정의당 등이 가세해 야권은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혼전을 벌일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것도 전통적으로 야세가 강한 서울 등 대도시에서 야당끼리 사분오열 치고 받을 형국이니 여당이 곁으로는 엄살을 떨면서 속으로는 안도하는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야권 스스로 『통합만 됐다면 휩쓸 수 있다』며 야측의 압승을 기대했던 서울에서조차 이번에는 야권의 어떤 후보도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다만 민주·평민 양당의 공천신청 마감 결과를 보면 현역의원끼리는 서로 가급적 지역구를 피한 경향인 데다가 강자로 인식되는 전 의원 또는 정치 신인끼리도 서로 비껴간 인상이 짙어 그나마 여당과의 싸움에 다소 숨통이 트인 것은 다행하다 하겠다.
그렇지만 현역의원 또는 강군에 붙은 야권의 약세 후보자들도 야권표를 갉아먹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마찬가지. 여기에 민주당이 아직도 드러내 놓지 않은 「참신한 신인」을 공천과정에서 표출시키거나 평민당이 「정책지구」로 비장의 카드들을 까놓으면 혼전의 양태는 한층 치열해질게 틀림없다.
각 당이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정치 1번지 종로. 이곳에서 「서울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중량급 후보감을 고르고 있는데 민주당에선 6·3세대 김중태씨가 나서고 있지만 김영삼 전 총재도 본인은 펄펄뛰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으나 정책적으론 나설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은 상태.
평민당도 최운상 전 파나마대사·문동환 목사 중에서 내세울 것이라는 소문.
민정당이 서울에 교수·언론인·기업인 등 신인을 내세운대 대해 민주·평민 양당도 변호사·교수 등 신인을 영입.
민주당에선 현승일(국민대)·노승우(외대)교수, 김정강씨(전민정당국책자문위원)와 새로 영입된 황병태 부총재·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에 학생운동가 이신범씨 등을 포진시켰고 김영관 부총재도 서울을 희망 중.
평민당에선 김경재씨가 서울로 나섰고 공천신청을 안한 최영근·박영록·이용희·조승형씨 중에서 일부가 서울출전 가능성이 있다.
여당후보가 허약하다는 신정치1번지 강남 갑에는 황병태 부총재(민주)·김경재씨(평민)·최재구 부총재(공화)·민권변호사인 김상철 평의회의장(정의당)등이 몰려 혼전이 예상된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은 야당에 실망감을 보이는 서울지역에 주로 출전할 작정.
강남 을에는 무소속의 홍사덕 의원이 일찌감치 깃발을 내세웠고 장기욱 의원은 서초로 가는 등 모두 강남 쪽을 선호.
공화당도 야당에 대한 서울시민의 기피 심리를 기대하고 김용채 사무총장(노원을)·최재구(강남갑)·한병기(서초을)·이하우(서초갑)씨 등 중량급을 내세워 이래저래 「서울시민의 선택」이 관심거리.
시골출신 야당인사들은 소선거구제하에서 여당 프리미엄을 겁내 일찌감치 대도시로 보따리를 싸 이농 현상. 또 민주·평민당이 영·호남에 배타적인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적지를 떠나 상경바람.
무소속 박찬종 의원이 부산에선 불리하다고 보고 서울 강남을 노리고 있고 노경규씨 역시 평민당 간판을 달기 어려운 부산을 버리고 서울 도봉에 신청.
지난 선거 때 김영삼씨를 지원한 오상현(무주-진안)·임재정(광주)씨는 고향에 발붙일 수 없어 서울로 신청.
다음으로 야세끼리 격돌해 여측에 실리를 챙겨 줄 가능성 있는 지역이 서울인접의 경기도 일부도시와 인천·대전 등지.
수원 을에선 박왕식 의원(민주)과 이병희 부총재(공화)가 맞붙었고 대전 동을에는 송천영 의원(민주)· 박완규 전 의원·윤성한씨(공화)가 야권끼리 난전을 벌일 구도.
경북에서 그나마 야권 명맥이 붙어있는 대구중구는 민주당의 김현규 원내총무가 김윤환 정무장관을 피해 선산-군위 지역구에서 이주해 왔으나 백승홍씨(공화)와 대구지역 학생운동권의 지도자인 이강철씨 (한겨레)가 맞붙어 야세를 가를 전망.
대구남구에는 11, 12대 차점 낙선으로 동정표가 많은 김해석씨(공화)에다가 8대 때 이효상 전국회의장을 낙선시킨 신진욱 전 의원과 송효익씨가 민주당 공천낙천 경우 무소속도 불사한다는 태세여서 야권만 난립.
한편 민주·평민 양쪽의 본거지인 영·호남에서 자기들 유력후보끼리 지역구 쟁탈전을 첨예하게 벌이는 지역도 적지 않아 양당이 이를 어떻게 조정할지도 관심사.
민주당의 경우 서울 동대문 갑에서 송원영 의원과 직선제 개헌안 서명주도 교수로 영입인사인 노승우 외대교수, 인천서구에서 유제연 의원 영입변호사인 이기문씨, 대구 수성구에서 윤영탁 의원과 영입변호사인 여동영씨 및 성만현씨(전 럭키이사), 포항의 최수환 전 의원과 방무성씨(재미교포·사회학박사), 경주의 심봉섭·황한수 전 의원, 부산동의 한석봉 의원과 영입인사인 노무현 변호사, 해운대의 이기택·이건일 의원, 동래 을의 최형우 전 부총재와 박관용 의원, 울산 남의 심완구·신병렬 의원 등이 대표적인 공천경합지구.
평민당의 경우 서울 중랑 갑의 김덕규 전 의원과 재야 영입파인 이상수 변호사, 성북 을의 조윤형 전 의원과 영입파인 이길재씨, 노원 을의 박병일 전 의원과 영입파인 임채정씨, 양천 을의 김영배 사무총장과 시인 양성우씨, 강동 을의 장충준 의원과 정진길 전 의원간의 경합상이 치열.
특히 「선생님 공천」만 따면 당선이라는 전남에서는 평민당 평균경쟁률이 5대 1로 치열. 4백31명의 신청자중 94명이 이곳에 신청했다.
광주 서갑에는 박광태씨·김수 전 의원·이기홍 변호사·정상용씨·이필선 전 의원 등이 광산에는 조홍규·박병용·김면중씨 등이 각각 평민 공천을 놓고 빡빡한 경합을 벌여 예선(공천전)이 본선(선거)보다 더 치열하고 힘들다는 게 중론.
이번 공천신청에서는 또 최근에 민주당을 탈당, 평민당에 입당한 홍영기 변호사가 서울에서 고향인 임실-창순에, 평민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한 유완형 변호사가 고향인 안성에서 동대문 을로, 또 강원채 전 의원이 성남에서 서대문을로 각각 공천신청을 해서 야권 내의 부분적 재편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고도원·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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