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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반도체 클린룸처럼...AI 대응용 전실(前室)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가 농장 부근을 출입하는 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가 농장 부근을 출입하는 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무궁화농장’. 산란계(알을 낳는 닭) 4만6000마리를 키우는 농가다. 이곳 계사 출입문 앞에는 1㎡ 남짓한 규모의 조그만 ‘전실(前室)’이 설치돼 있다. 계사 출입문 바깥에 1m가량 길이의 패널 지붕이 있고, 양옆은 패널로 막은 구조다. 출입구 쪽은 터져 있다.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을 연상케 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 대비 최후 보루 역할 기대 #출입구 바깥 별도 공간에서 소독 및 복장 갖춰 #전문가 “전실 제대로 운영하면 AI 막을 수 있다” #농진청, 지난해 고안해 축사 출입구 설치 권장 #현재 전실 설치한 가금류 농가 전체 1% 수준 #

농장주 송복근(67·대한양계협회 경기도지회장)씨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권유로 내 돈을 들여 전실을 설치했다”며 “전실 안에 소독약이 든 방역 분무기와 방역 신발, 방역복을 준비해 놨다”고 말했다. 송씨는 “계사에 들어가기 전에 전실에서 몸을 소독한 뒤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방역 신발로 바꿔 신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붕이 설치돼 있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 등 조류의 분변을 피할 수 있고, 계사 출입자가 계사와 분리된 공간에서 소독하고 방역 신발과 방역복 착용이 가능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축사 유입을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무궁화농장’. 계사 출입문 앞에 설치한 ‘전실(前室)’에 대해 농장주 송복근(67ㆍ대한양계협회 경기도지회장)씨가 설명하고 있다. 전실 안에는 소독약이 든 방역 분무기와 방역 신발, 방역복이 준비돼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무궁화농장’. 계사 출입문 앞에 설치한 ‘전실(前室)’에 대해 농장주 송복근(67ㆍ대한양계협회 경기도지회장)씨가 설명하고 있다. 전실 안에는 소독약이 든 방역 분무기와 방역 신발, 방역복이 준비돼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소재 양계농가인 ‘무궁화농장’ 입구에 설치된 농장 안내문.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소재 양계농가인 ‘무궁화농장’ 입구에 설치된 농장 안내문. 전익진 기자

해마다 되풀이되는 AI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농가 등이 방역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역 체계는 주로 농장 출입에 따른 바이러스 감염 및 확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가운데 농촌진흥청이 지난해부터 축사 출입구에 설치를 권장하고 있는 ‘전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실이란 아파트로 치면 현관문과 중문(中門) 사이에 신발을 벗는 공간이다. 농진청은 AI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전실을 제시했다.

문홍길 농친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전실에서 밖에서 신던 신발(장화)을 벗고 축사 안 전용 신발로 갈아 신은 뒤 손 소독을 하고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이러스 대부분은 차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AI 바이러스를 옮기는 건 신발 바닥이 첫째고 그 다음이 손인데, 전실을 설치하면 바이러스의 축사 유입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낙연 국민총리가 지난 5일 오전 서울정부종합청사 영상회의실에서 포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발생한 AI(조류인플루엔자)과 관련한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낙연 국민총리가 지난 5일 오전 서울정부종합청사 영상회의실에서 포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발생한 AI(조류인플루엔자)과 관련한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농진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전국의 가금류 농가는 2600개로 여기서 기르는 가금류는 1억5000만 마리다. 지난해 농진청에서 AI 예방을 위해 고안한 모델이 전실이다. 하지만 아직 전실을 모르는 농가가 대다수여서 실제 전실을 설치한 가금류 농가는 전체 1%도 안 될 것이라는 게 농진청 설명이다. 문홍길 가금연구소장은 “아직 전실 설치 전과 후의 질병 감염률을 조사한 자료는 없다”면서도 “자체적으로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가금류 축사에 전실만 설치해도 AI 바이러스 차단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방역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전실 안에 발판 소독조(소독기)를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진청 실험 결과 암모늄 희석액이 있는 발판 소독조에 장화를 담근 직후 세균은 53.5% 억제됐으며, 소독 후 4시간이 지난 뒤에는 총 세균의 99%가 없어졌다. 문 소장은 “축사 안에서 신는 장화 등은 사용하기 하루 전에 미리 전실 안에 있는 발판 소독조에 담가만 둬도 세균 억제 효과는 매우 높아진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한 산란계 농장에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인되자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충남 홍성 천수만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주변을 소독 하는 등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충남 홍성 천수만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주변을 소독 하는 등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전실 설치 비용은 공간 크기나 벤치형 펜스 재질 등에 따라 100만~300만원 정도다. 문 소장은 “전실 설치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농장주의 의지 문제다. AI가 발생했을 때 입는 천문학적 피해를 고려하면 전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농진청은 전실의 효과적인 설치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전실 중간에 벤치형 펜스(울타리)를 놓는다. 사람이 전실에서 축사로 곧바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60㎝ 높이 정도의 벤치를 두면 물리적·심리적으로 축사 안과 밖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벤치에 앉을 수 있어 신발을 갈아신기 편한 장점도 있다.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충남 홍성 천수만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주변을 소독 하는 등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충남 홍성 천수만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주변을 소독 하는 등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홍성=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서산 잠홍저수지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철새 도래지를 소독하며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서산과 당진 등 철새도래지 곳곳으로 조류인플루엔자(A)가 확산된 지난해 11월 27일 서산 잠홍저수지에서 축협 관계자들이 방역차를 이용, 철새 도래지를 소독하며 차단 방역을 하고 있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박기태 가금연구소 수의연구사는 “철새가 축사 위에 분변을 배설하더라도 지붕에 다 걸린다. 쥐와 새 등 야생동물도 바이러스를 옮기지만, 결국 축사 안으로 들어가는 건 사람이다. 전실을 제대로만 운영하면 AI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실 확산에 적극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시행 중인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과정의 하나로 축사에 방역시설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일정액을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며 “이 제도를 활용하면 가금류 농가에서도 전실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 때문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에서도 전실의 방역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최권락 경기도 조류질병관리팀장은 “축사 소독과 농가에 드나드는 차량·반입물·사람 등에 대한 기본적인 방역 활동에 더해 축사 입구에 전실을 설치해 운영한다면 AI 방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7일 신고된 전남 나주시 육용 오리 농가(사육 규모 약 1만6500마리)를 최종 정밀 검사한 결과 고병원성 H5N6형 AI 바이러스로 확진됐다. 이로써 지난해 11월 19일 전북 고창에서 첫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 올겨울 들어 현재까지 AI 발생 건수는 총 1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9건이 전남에서 발생했다.

양주·수원·전주=전익진·최모란·김준희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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