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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미국 항만 운영권 인수' 없었던 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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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기업인 두바이 포트월드(DPW)가 9일 미국 내 항만 운영권 인수를 포기했다.

미 국내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했던 이번 사태는 이로써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차별에 대한 굴복'이라는 반발이 아랍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어 미국과 아랍 관계에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우려된다.

◆ "두바이가 대신 항복한 것"=DPW의 에드워드 빌키 최고영업책임자(COO)는 이날 성명에서 "UAE와 미국의 순탄한 관계를 위해 미국 내 6개 항만 운영 사업을 미국 업체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술탄 빈 술라임 DPW 회장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UAE 두바이 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록 국영기업이지만 DPW의 자발적인 결정에 따른 조치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랍 언론들은 "미 의회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 의회와 주 정부들이 DPW의 항만 운영권 인수에 강하게 반발하자 두바이 당국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와 의회의 힘겨루기 속에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두바이 당국이 대신 항복을 선언하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탈출구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의 이중 기준(double standard)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 반아랍 감정이 급기야 비정치적 사안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아부다비 국영은행의 와다 알타하는 "이번 사태는 미국의 명백한 이중 플레이"라며 "이에 대해 아랍계 경제단체나 사업가들이 아무런 보복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중동의 '오일 머니'가 미국에 투자돼 있는 상황에서 안보를 이유로 내세운 아랍계 차별을 그냥 묵과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일 머니는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희비 엇갈린 힐러리와 부시=이번 사태는 미 국내정치에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무엇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부시 미 대통령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달 DPW가 미 항만 운영권을 인수한 직후부터 '절대 불가'를 외치며 반대론에 앞장섰다. 11월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안보 이슈' 선점 경쟁에서 한발 앞서가려는 전략이었다. DPW의 미 항만 운영권 인수 포기로 힐러리는 깔끔하게 승리를 거뒀다.

반면 백악관은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됐다. 법안 거부권까지 거론하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던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체면만 구긴 형국이 됐다. 공화당 지도부의 반기는 더욱 뼈아프다. 공화당 상.하원 지도부는 사태 초기부터 아랍계에 비우호적인 여론을 앞세워 백악관과 대립각을 세워 갔다. 9일에는 부시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강력 저지 방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재선 대통령의 한계를 다시금 실감해야 했다.

반면 공화당 차기 주자들은 향후 정치일정에서 독자적 활동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미 정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서울=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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