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의 비전이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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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정당의 제13대 지역구 의원후보 공천을 보면 군출신 실력자급의 탈락, 신인의 대거 등장, 전 대통령의 인척배제 등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지난번 조각때와는 달리 현상유지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고 나름대로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신인 발굴에 애쓴 흔적을 볼 수 있다.
전 대표위원과 창당사무총장을 탈락시킨 것은 여권내부정치의 산물로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셈이며, 전 대통령의 인척 배제도 현 대통령이 자기 인척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함께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신인의 대량 등장은 지역구가 92개에서 2백24개로 늘어난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여당이 소선거구제에서 상대적으로 신인을 많이 내세우는 것은 당 체질개선의 의지라고도 볼 만하다.
이 같은 공천 결과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민정당의 당내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당내 역학관계나 서열에 변화가 올 것이고 당 지도부의 구성이나 당 운영의 방식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예상할 수 있는 일은 노태우 총재의 당 장악력의 강화다. 노총재는 일찍이 민정당에서 자기 인맥을 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한 번도 자기 손으로 공천을 해본 일이 없었다.
그 동안 전 대통령에 의해 짜여진 민정당을 이끌고 정치를 하고 선거를 치렀던 셈인데 이번에 비로소 자기 손으로 민정당을 재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총재의 지도력에 제약 요소로 작용할 만한 인물을 배제하거나 선거 때 도와준 인물을 발탁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보여지고 공천 내용도 이런 점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원래 민정당에는 인맥다운 인맥도 없었지만 과반수가 넘게된 신인의 등장으로 어떤 형태로든 당의 질서와 체질에 변화가 오리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1백25명에 달하는 신인들의 정치 역량이나 정치 성향은 아직 미지수다. 이들이 전 정권때보다는 개방된 분위기에서 자기 의사를 표출하면서 영향을 미칠 때 질서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는 민정당의 이번 공천에서 새 정치에 대한 새 정권의 의지가 표출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러나 공천 내용을 보고서는 새 정권이 어떤 정치를 하려하는지 추측하기 어렵다. 일부 실력자급 배제를 들어 전 정권과의 단절에 뜻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그런 기준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기준이 있었다면 기용될 수 없었을 인물도 다수 보이기 때문이다.
문민정치의 확대라는 기준이 적용된 것 같지도 않다. 일부 핵심 군 출신을 배제했지만 전보다 많은 수의 군 출신이 공천을 받았다. 권위주의 청산, 민주화 확대라는 의지의 표명도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많은 지식인들을 발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경파 배제도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온건파 위축현상을 보게 된다.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인 신인의 발탁기준도 무엇인지 설명이 없다.
이번 공천은 노대통령의 임기 중 정치구도를 짜는 것일 뿐 아니라 노대통령 이후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노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중 14대 국회를 맞게 되므로 또 한번 공천권을 행사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대통령 후보의 당내 경선, 파벌의 인정 등을 염두에 두고 이번에 공천을 했는지도 관심사다.
민정당의 공천을 보고 갖게 되는 이런 여러 가지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결국 앞으로의 정치 상황의 전개를 보고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만 13대 국회가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주정치를 정착시키느냐, 또한번의 실패를 추가하느냐의 중대한 실험이 된다는 점을 민정당이나 공천자들은 거듭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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