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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공모제 확대 놓고 커지는 교총·교육부 갈등

중앙일보

입력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등 소속회원들이 정부의 교장공모제 확대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등 소속회원들이 정부의 교장공모제 확대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국공립 초·중·고교 9955곳 중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시행하는 632곳 전체에서 교사 경력 15년 이상이면 교장 공모에 지원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을 놓고 교육부와 국내 최대 규모 교원단체인 한국교원총연합회(교총)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교총, 4일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철회하라" 집회 #김상곤 부총리 취임 이후 교육부·교총 갈등 깊어

교총은 4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교장공모제 확대 철회를 요구했다. 교총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교장공모제는 교장 임용 방식의 다양화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다. 혁신학교, 도서벽지 등의 학교들이 교장을 공개적 모집을 실시해 학부모·교사·외부인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적격자를 뽑아 4년의 임기를 보장한다. 그런데 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교육경력 15년 미만인 평교사가 공모에 참여할 수 있는 학교 비율을 내부형 교장공모제 학교의 15%로 제한해 왔다.

그런데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고, 이런 학교 비율의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도입된 학교라면 모두 경력 15년 이상 평교사의 지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교총은 입법예고안을 반대하며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의 교장 공모가 확대되면 담임 등 힘든 업무를 맡아온 교사들의 승진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또 교장공모제가 교육감의 보은 인사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국정감사 때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올해까지 교장 자격증 없이 공모로 교장이 된 73명 중 70%가 전교조 출신으로 파악됐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교감·교장이 되려면 교사로서 최소 25년가량 근무하고 연수·연구 등을 통해 검증을 거쳐야 한다. 15년 경력만으로 교장이 될 수 있으면 누가 담임·보직교사와 교감을 맡고, 도서·벽지 학교에 가려 하겠느냐”고 강조했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좋은교사운동본부 등 진보 성향의 교원단체는 입법예고 내용에 찬성한다. 전교조는 “현재의 승진 임용제는 점수를 통해 교사들을 통제하는 관료적 제도”라며 “교장공모제가 확대되면 유능하고 민주적인 교사가 교장을 맡을 기회가 늘어나 학교 혁신과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평을 냈다.

보수적 성향의 교총은 교장 자격증 소지자들의 교장 진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전교조는 조합원들의 교장 진출 기회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교육부는 진보 교육감들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바쁘고, 교총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기지 않으려고 싸우고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 교육부와 교총은 갈등을 빚고 있다. 김 부총리는 경기도 교육감 시절의 대표 상품인 혁신학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김 부총리가 이끄는 교육부는 “성적 줄 세우기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소양을 향상하는 교육을 하려면 혁신학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총은 “혁신학교의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특정 학교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은 일반 학교와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반대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교육부는 "일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며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우선 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관련 시행령을 지난달 바꿨다. 교총은 ‘정부가 학생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한다’고 반대했다.

교육부는 국가학업성취도평가도 바꿨다. 종전엔 매해 중 3, 고 2 학생 전체가 다 보던 방식이었다. 이를 표집된 3% 학생만 보는 방식으로 바꿨다. 교육부는 “학생·학교 간 과도한 경쟁 완화를 위해 표집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학생 성취수준과 학교 교육의 질을 관리하려면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용어사전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전국의 중고교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는지, 교육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측정하기 위해 국가가 매해 실시하는 평가다. 중학교 3학년과 고교 2학년 대상으로 국어, 수학, 영어 시험을 봐서 평가한다. 한때는 이들 학년에 해당하는 학생이 전국에서 모두 시험을 봐서 '일제고사'로도 불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해당 학년 중 3% 정도만 표집을 해서 시험을 보는 체제로 바뀌었다.

김 부총리와 교총 간 대립 격화에는 오는 6월의 지방선거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은 진보와 보수의 가치논쟁이 아니라 정책의 효용성 등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나 교육감에 따라 교육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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