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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해진 그들, 똑똑한 쇼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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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화여대 앞에 있는 ‘왓슨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여성용품 매장이다. 이 곳을 찾은 이 모(21)양은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한 곳에 몰려 있어 쇼핑하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는 화장품·악세사리 등 20대 여성이 찾는 물건이 많이 있다. 20대 여성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 오르면서 이런 매장들이 힘을 내고 있고 온라인 쇼핑몰들도 앞다퉈 여성전문 코너를 개설하고 있다. 여성의 소비패턴이 많이 바뀌고 있다. 20대들은 볼거리와 패션 정보가 있는 매장을 많이 찾고 장년층들도 인터넷에서 쇼핑을 많이 한다. 또 명품에 대한 동경은 시들지 않고 있으나 명품 못지 않게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제품도 잘 팔리고 있다. GS왓슨의 강연수 마케팅 팀장은 “ 여성 소비자들이 기업 마케팅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의 힘=온라인 경매업체인 옥션의 회원 가운데 20대 여성의 비중은 20%가 넘는다. 전체 여성 회원 중에서도 40%나 된다. 실제로 20대 여성들은 옥션 물건을 얼마나 구매할까. 옥션에 따르면 의류.패션 부문의 입찰자 중 20대 여성의 비중은 23%. 이 때문에 온라인 쇼핑업체들은 20대 여성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옥션은 지난해 말 전자상거래 사이트로는 최초로 패션 정보도 알려주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여성 종합 패션포털 '샌시'(sancy.auction.co.kr)를 열었다. 쇼핑하면서 패션 트렌드를 살피고 있는 신세대 여성 소비자들을 겨냥한 포석이다. 디앤샵(www.dnshop.com)에는 '빨간 구두'란 코너가 있다. 여성 고객들이 살 만한 상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저렴하게 판매한다. 한 시간 내에 구매하면 최대 30%까지 할인된다. 신세계닷컴(www.shinsegae.com)은 여성 전문매장인 'ONLY 신세계'를 운영하고 있다. 언더웨어부터 일반 여성 브랜드 의류를 한자리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옥션의 배동철 커뮤니케이션실 이사는 "최근 온라인쇼핑몰에 젊은 여성 전용코너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전문매장은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에도 잘 된다. 왓슨스 이대점은 일반 편의점이나 왓슨스 다른 매장보다 매출이 두세 배나 많다. 스타벅스도 이대점에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LG생활건강도 자신의 개성을 내세우는 2030세대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 지난달 향(香)전문연구소 '센베리 퍼퓸하우스'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매년 200~300종의 향을 개발해 다양한 제품에 응용할 계획이다.

◆상식 타파한 이색 구매="색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에 눈길이 갑니다." '주인장닷컴(www.juinjang.com)' 단골 손님 문선아(27.회사원)씨의 말이다. 신세대 소비자라면 같은 물건이라도 재미있는 방법으로 판매하는 쪽에 끌린다는 것이다. 바로 주인장닷컴에서는 콧수염을 기른 '주인장'이 나와 문구류와 캐릭터 상품 등을 판다. 유머러스한 판매 기법을 동원했다. 또 온라인 쇼핑에도 '1인 개성시대'가 열렸다. 독서실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미니 홈피나 블로그에 있는 쇼핑센터를 이용한다. 싸이월드의 '타운'이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카페 스토어' 등에 자주 들어간다.

◆'신주류 시니어'의 등장=나이 든 소비자들이 물건을 대충 구입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부 김모(49)씨는 매장에 가면 쇼핑카트부터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씨는 "부피 큰 물건을 카트에 싣고 다시 차에 옮기고 집까지 가져가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다"며 "고급품은 백화점에서, 적당한 크기의 저렴한 상품은 할인점에서, 부피 큰 물건은 인터넷몰에서, 매일 먹는 간단한 식품은 동네 수퍼에서 사먹는다"고 말했다. '따로따로 쇼핑'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TBWA코리아.금강기획.LG애드.MBC애드컴.한컴.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등 국내 6개 광고대행사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50대 소비자들의 인터넷구매 경험은 2001년 3.2%에서 24%로, 인터넷 구매의향은 2001년 11.4%에서 37.6%로 늘었다. '세일 기간을 기다려 물건을 구입'하는 경향(2001년 47.9%→지난해 57.1%)도 차츰 늘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이들을 '신(新)주류 시니어'로 부른다.

◆'매스 밸류'도 확산 조짐=요즘 유럽에서는 스웨덴 의류업체 H&M의 제품이 인기다. 금색 치마, 찢어진 니트, 굵은 가로줄 무늬 스웨터, 털로 만든 방울장식 조끼…. 이들 제품은 나오기 무섭게 팔린다. H&M 새 옷이 나오면 매장마다 사람이 몰린다. 그런데 H&M 제품은 비싼 명품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유행했던 찢어진 니트는 명품 옷의 30분의 1 가격이다. 미국 의류업계에서는 올 들어 '메이드 인 USA'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여성복업체 '핫 키스(Hot Kiss)'는 현재 제품의 60%가량을 캘리포니아에서 만든다. 나머지 40%는 중국 등에서 수입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지 생산과 수입의 비율이 30 대 70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이를 두고 CNN머니는 지난 1일 "미국 의류회사들이 유럽의 잘나가는 의류업체인 H&M 등을 벤치마킹해 본사의 생산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트렌드를 '매스 밸류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명품에 비해 초저가이면서도 새로운 유행을 창조해 가치(Value)있는 것을 원하는 다수(Mass)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 이들 소비자를 '프라브족(PRAVS, Proud Realisers of Added Valu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값 비싼 브랜드를 선호하기보다 싸면서도 좋은 물건을 선호하는 층이라는 뜻이다. 의류업계 관계자는 "국내업체들도 이 같은 소비 트렌드를 좇아 '매스 밸류'제품을 조만간 많이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품 동경은 여전=6개 광고 회사의 조사 결과 유명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구매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03년 유명 브랜드 구입률이 29.9%였던 것에 비해 2004년에는 33.9%, 2005년에는 39.3%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갤러리아명품관은 지난달 밸런타인 시즌(10~14일) 때 까르띠에.구찌.셀린느.베르사체 등 유명 명품 브랜드를 많이 팔았다. 갤러리아명품관은 이 여세를 몰아 지난달 27일 직수입 매장 스티븐 알란 걸을 선보이기도 했다. 1년여 전부터 등장했던 '노노스족(No Logo No Design)'을 겨냥한 판촉도 활발하다. 노노스족은 명품 브랜드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차별화되고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부류를 일컫는 말. 현대백화점 민형동 영업본부장은 "조만간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의 판권을 사들여 노노스족 전용 매장을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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