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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일 달러'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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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5년 10월.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국영 투자사인 두바이 인베스트먼트 그룹(DIG)이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의 고급 호텔인 에식스 하우스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5000만 달러를 들여 호텔을 재단장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뉴욕의 상징적 호텔 중 하나가 아랍 기업에 넘어갔지만 반발은 없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대단히 좋은 뉴스"라며 이를 반겼다.

#2006년 3월. 미 정부는 DIG와 같은 계열의 두바이 인터내셔널 캐피털(DIC)의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미 조지아와 코네티컷주에 군용 항공기.탱크 엔진에 사용되는 정밀 부품을 생산하는 영국 돈캐스터스 그룹을 DIC가 인수하려는 계획을 안보 문제를 들어 정밀 심사키로 한 것이다. 두바이 포트월드의 미 6개 항구 운영권 인수 논란에 이어 아랍의 투자에 대한 두 번째 논란이다.

'오일 달러'가 미국을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최근 급증하는 아랍 국가의 대미 직접투자는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으로서는 크게 반길 일이다. 문제는 '안보 역풍'이다. 이 때문에 아랍의 큰손들은 '고마운 투자자'로 대접받던 미국에서 하루아침에 '테러 방조국'이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 "오일 달러가 밀려온다"=워싱턴 포스트는 중동권의 미국 내 직접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아랍 자본의 대미 직접투자액은 2003년 4200만 달러까지 줄었다가 2004년 12억 달러, 2005년에는 6억54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물꼬를 튼 나라가 아랍에미리트다. 이 나라의 국영기업들은 지난해 에식스 하우스 외에 ▶미국 남부 선벨트의 임대아파트▶다임러 크라이슬러 지분 2.2%▶뉴욕 맨해튼 헴슬리 빌딩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아랍 자본의 대미 투자가 증가한 것은 유가 급등으로 오일 달러가 넘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7260억 달러에 이르는 등 엄청난 무역적자로 외국 자본의 투자가 절실한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고유가가 당분간 꺾이기 힘들고, 아랍 국가들의 해외투자가 정책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대미 직접투자 증가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랍권의 투자는 미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0.3%에 불과해 확대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 '안보냐, 경제냐' 딜레마=하지만 9.11 이후의 '안보 제일주의'가 이런 흐름을 꺾고 있다. 이는 아랍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미 지난해 중국 롄상 그룹이 IBM PC사업 부문을 인수할 때도 상당한 논란이 일었고, 미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던 중국 국영기업 CNOOC는 미 정치권의 압력에 결국 계획을 접었다.

문제는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돈을 가려 받을 형편이 되느냐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미국이 '외국 돈'과 '국가 안보'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시련대에 섰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과민반응으로 중동계 자본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도 월가 등에서 확산하고 있다. 다급해진 백악관이 의회를 설득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오일 달러 딜레마'는 결국 안보 강박증을 부추긴 부시 행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랍아메리칸연구소 제임스 조그비 소장은 7일 정치인들이 앞다퉈 '아랍 때리기(Arab bashing)'에 나서는 상황을 중간선거만 겨냥한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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