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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광주 아파트서 화재 3남매 사망 … 불 낸 22세 엄마 긴급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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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7년의 마지막 날 새벽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생후 15개월부터 4세까지 모두 3남매가 한꺼번에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경찰은 아이들의 엄마가 외출 중인 남편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연락을 한 점과 직전까지 부부싸움했던 점을 토대로 방화 가능성을 포함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중실화 및 중과실치사 혐의 #처음엔 “라면 불 켜놓고 깜빡” 진술 #나중에 “담뱃불 이불에 꺼” 바꿔 #21세 남편과 이혼한 지 4일돼 #화재 전 전화로 아이 양육 놓고 다툼

31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36분쯤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화재가 난 아파트는 A씨(22·여)와 최근 이혼한 남편 B씨(21)씨가 3남매를 키우던 집이다.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12월 31일 오전 불이 나 남아 2명(4·2세)과 여아 1명(15개월) 등 총 3명이 숨졌다. 국과수와 합동감식반이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12월 31일 오전 불이 나 남아 2명(4·2세)과 여아 1명(15개월) 등 총 3명이 숨졌다. 국과수와 합동감식반이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소방당국은 불이 난 아파트 11층 집에 소방관 등 65명과 소방차 등 19대의 장비를 투입해 진화에 나서 화재 신고 약 30분 만인 오전 2시53분쯤 진화했다.

119구조대는 아파트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베란다에 있던 A씨를 구조했다. A씨는 손과 발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A씨의 자녀들인 첫째(4), 둘째(2), 막내(생후 15개월·여) 등 3남매는 작은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광주 북부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미 불꽃이 아파트 바깥까지 번진 상태였다”며 “아이들도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및 소방당국은 불이 아이들이 생활해온 작은방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작은방이 집중적으로 타 있었고 거실과 부엌 등 주변은 그을린 정도였다고 한다.

A씨는 화재 직후 “라면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아이들이 있는 작은방에 들어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이후 밖에서 불이 난 것을 확인한 뒤 베란다로 대피했다. 남편과 통화가 되지 않아 함께 있는 남편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119에 신고를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후 “라면 물을 올린 것은 착각한 것 같다. 담뱃불을 이불에 비벼 껐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적어도 A씨의 과실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A씨를 중실화 및 중과실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외부에서 술을 마신 뒤 전 남편 B씨와 전화와 스마트폰 메신저로 다퉜다. 집에는 화재 30분 전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두 사람이 싸운 이유는 자녀 양육 관련 문제였다고 한다. A씨는 “나 죽어븐다(죽어버린다)”는 메시지도 B씨에게 보냈다. B씨는 불이 나기 5시간 전부터 외출 중이었으며 화재 당시 친구와 PC방에 있었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12월 27일 이혼했으며 자녀 양육 문제로 자주 다퉈온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A씨가 자녀 양육을 담당하고 B씨가 매달 약 9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에도 함께 거주하는 등 부부관계는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에 아이를 가진 A씨와 B씨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불이 난 집은 월세 35만원짜리 아파트였으며 올해 초 전기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어왔다. A씨는 콜센터에서 일하다 그만뒀으며 직장생활을 하던 B씨도 최근에는 일용직 근로로 생계를 꾸려왔다.

A씨 등은 올해 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부양의무자인 A씨의 친정 부모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A씨 등은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매달 약 130만원의 긴급생계비(최장 6개월)를 지원받았다. B씨가 최근 다리를 다치면서 지난 1일 다시 긴급생계비 약 130만원을 지원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화재 원인을 추정할 만한 뚜렷한 단서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며 “A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데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서 방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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