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마지막 아날로그 증권맨 떠납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마지막 아날로그 증권맨은 떠납니다."

증권업계의 산증인이자 마당발로 통해온 증권업협회 김명기(57.사진) 상무가 31년 8개월간의 협회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일 퇴임했다.

그는 전산화와 홍보, 연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증권산업이 틀을 잡아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증권업계 전산화를 꼽았다. 손으로 기록하는 거래 장부 탓에 사고가 빈발하자 1981년 대통령 지시로 증권업계의 업무 전산화가 시작됐고, 김 상무는 협회 전산개발위원회의 실무자로 사업을 주도했다. 일본 원서까지 갖다놓고 밤새워 일했지만 정작 업계와 고객 모두 크게 반발했다.

"고객들 불만이 컸죠. 전에는 며칠 뒤에 돈 준다고 대충 해놓고 주식을 거래할 수 있었는데, 전산화 때문에 확실히 증거금을 넣지 않으면 매매주문도 안들어가니-. 증권사 입장에선 영업 못하겠다고 아우성이고. 그래도 당시에 밀어부치지 않았으면 아마 한국 증권산업의 발전은 한참 늦어졌을 겁니다."

김 상무는 전산화의 성공적인 정착 이후 협회 홍보실장, 연수부장 등을 거쳐 2001년부터 상무직을 맡았다. "소띠라 그런지 가는 데마다 그렇게 일복이 많아요. 89년 홍보실에 갔더니 신생 언론사가 쏟아져 갑자기 기자 수가 폭증해 일이 두세배로 늘었죠. 덕분에 많은 언론인들과 동고동락하게 됐고, 지금도 '형님 아우'하는 사이로 지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는 "그동안 너무 숨가프게 살아왔던 것 같다"며 "당분간 푹 쉬고난 뒤 남은 인생을 설계해보겠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상무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