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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명의 호모디지쿠스

인터넷으로 연결된 지구촌 부족, 담벼락 말고 사람 향해 대화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6만5000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각 대륙에 이주한 인류가 다시 모여 떠들게 된 것은 인터넷 덕분이다. 인터넷은 지구라는 뇌 위에 펼쳐진 신경 다발이 됐다. 지구촌 가족이 된 인류는 마치 서로 곁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웃고 어울린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통해 인류가 예전의 부족사회처럼 다시 돌아가는 것을 재부족화(retribalization)라고 불렀다. 인터넷 시대야말로 진정한 지구촌 부족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광활한 커뮤니케이션 무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 남들 다 보는 페이스북 댓글을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것이 서로의 대화인지, 남들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방백인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의 대화창을 자세히 보면 나와 다른 사람의 말풍선 꼬리가 서로 반대쪽으로 달려 있다. 이 작은 시각적 효과가 우리에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만일 모든 대화가 정중앙의 사각형 박스 안에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기록된다면 대화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게시판에 글을 쓴다고 여길 것이다.

게시판. 글을 쓰는 담벼락이다. 우리는 담벼락에는 글을 쓰고, 대화창에서는 말을 한다. 담벼락의 글은 불특정 다수가 나중에 보리라 생각하는 것이고, 대화방의 말은 지금 특정된 상대방이 듣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게시판과 대화방에서는 말투도, 말 내용도 달라지게 된다.

IT기업의 제품에도 이런 차이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켜 문제가 생기면 블루 스크린이 뜬다. 이 에러 창은 파란 화면에 알 수 없는 오류 코드가 가득하다. 그러나 페이스북·트위터의 에러 창에는 Oops!(이런!)와 같은 인간적 비명이 에러 메시지로 나타난다.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와 인간의 대화를 서비스하는 회사들의 차이인 것이다.

기능적인 원리로 보면 두 서비스의 작동 방식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우리는 이것을 서로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대한다. 가장 큰 특징은 내가 담벼락을 대하고 있는가,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의 차이다. 대체로 담벼락에는 인격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저주·비난·조롱·낙서 같은 것들을 쏟아 내곤 했다. 그래서 인터넷의 글이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담벼락을 향하는 것이 되면 왜곡을 시도하는 일도 일어난다.

지난 수년 사이 인터넷의 악의적 여론 조작은 양(量)에서 질(質)로 바뀌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댓글 부대까지 동원해 숫자를 늘리려던 시도는 2017년 대선에 와서는 가짜 뉴스라는 내용을 바꾸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힐러리에게 패배한 버니 샌더스의 모임에 가입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반(反)힐러리 가짜 뉴스를 링크하며 샌더스와 힐러리를 이간질시켜 트럼프를 도왔다. 담벼락의 글을 조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속이려고까지 한 것이다.

우리에겐 원시의 세계에 대한 향수가 있다. 모두가 빈부 차이 없이 평등했던 원시공산제 사회나 공동체의 직접민주주의 형식을 거쳐 선출된 부족장의 수평적 리더십, 소박하고 단순함 속에서 즐겼던 삶의 평화, 그리고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따뜻한 대화의 기억이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넘치도록 많은 시대인데도 우리가 외로움과 소통의 갈증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수많은 이야기가 사람이 아닌 담벼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터넷의 이야기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잃어버린 대화와 원시 부족사회에서 누렸던 그 배려와 평화의 기억도 함께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