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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스위스가 올림픽을 국가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

중앙일보

입력

전쟁에 앞서 진지 구축부터 해야 한다. 성공적 등정에 베이스캠프가 빠질 수 없다. 세계 각국이 올림픽에 참가할 때 마련하는 ‘내셔널 하우스’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원래 내셔널 하우스의 주요 목적은 낯선 타국에서 경기에 임하는 자국 선수단을 보호하는 데 있지만 최근엔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국가 브랜드 홍보다. 각종 미디어 행사를 열어 손님을 맞으며 자연스레 국가 브랜드 마케팅에 활용한다. 스위스가 특히 이런 내셔널 하우스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을 40여 일 앞두고 스위스의 내셔널 하우스 전략을 먼저 살펴봤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경기 직관보다 재미있는 내셔널 하우스 #VIP외 일반 공개는 스위스가 유일 #소프트 콘텐트 마케팅의 일환·

스위스 특산품인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외관이 돋보이이는 스위스의 하우스 코리아 2018. 평창 용평리조트 내 올림픽 빌리지에 설치될 예정이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스위스 특산품인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외관이 돋보이이는 스위스의 하우스 코리아 2018. 평창 용평리조트 내 올림픽 빌리지에 설치될 예정이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평창엔 한국관 포함 17개 내셔널 하우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등 빙상경기가 열리는 강릉올림픽파크. 한국 홍보관은 이곳에 위치할 예정이다.[사진 강릉시]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등 빙상경기가 열리는 강릉올림픽파크. 한국 홍보관은 이곳에 위치할 예정이다.[사진 강릉시]

내셔널 하우스의 주목적은 자국 선수단 관련 보호활동이다. 선수와 스태프 쉼터와 자국 언론매체가 사용하는 미디어 룸이 여기에 있다. 최근엔 이런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전통과 문화를 현지에 소개하는 ‘작은 대사관’ 역할까지 하는 내셔널 하우스도 있다. 자국 문화를 알리는 홍보 부스를 따로 만들어 각국 스포츠 관계자들을 초대해 민간외교 활동을 하는 셈이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한국관을 포함해 총 17개의 내셔널 하우스가 만들어진다. 일본·스위스·미국·스웨덴·슬로베니아·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프랑스 9개국은 평창에, 한국·캐나다·중국·체코·네덜란드·러시아·슬로바키아·핀란드 7개국은 강릉에 짓는다.
운영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가령 미국과 독일은 내셔널 하우스를 운영하긴 하지만 철저히 관계자와 선수 중심 공간이다. 반면 스위스와 스웨덴·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은 자국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내 놓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전통 의상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등 보다 열린 운영을 할 예정이다.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때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입장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스위스는 무료로 내셔널 하우스를 일반에 완전히 공개하는 유일한 나라다.

미리 가본 스위스 하우스

평창에 설치될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외관. 현재 유일하게 일반 공개를 결정한 내셔널 하우스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평창에 설치될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외관. 현재 유일하게 일반 공개를 결정한 내셔널 하우스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스위스는 내셔널 하우스에 공을 들이는 나라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다음 개최국 평창 홍보관 다음으로 인기가 높아 8만5000명이 스위스 하우스를 찾았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는 50% 늘어난 하루 평균 8000여 명의 방문객을 목표로 잡고 있다. 평창 용평리조트 올림픽 빌리지 안에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데, 스위스 전통 가옥 샬레 스타일의 2층 건물(200㎥ 면적) 세 동이나 된다. 그 안에 선수 라운지뿐 아니라 스위스산 제품을 소개하는 쇼룸에 아이스 링크까지 들어있다. 스위스는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보다 유달리 공을 들여 내셔널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 브랜드 마케팅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소프트 콘텐트로 매력 발산

내부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 브랜드인 '홀겐글라러스' 사의 클래식 가구로 채워진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내부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 브랜드인 '홀겐글라러스' 사의 클래식 가구로 채워진다. [사진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소치 동계 올림픽 때 스위스 하우스가 인기를 끌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식당이었다. 라끌렛부터 퐁듀 등 스위스 전통 음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큰 관심을 모았다.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 커뮤니케이션 팀리더 마이크 데이비드 부르크하르트(Mike-David Burkhard)씨는 "소치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식당에서만 1400kg의 치즈와 1만3260kg분량의 소시지가 소비되었다"고 전했다. 스위스 전통 식당은 이번 평창에서도 운영된다.

제네바 호수를 끼고 있어 연중 일정한 온도로 포도를 재배해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라 꼬뜨 지역 모르쥬 와이너리. 유지연 기자

제네바 호수를 끼고 있어 연중 일정한 온도로 포도를 재배해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라 꼬뜨 지역 모르쥬 와이너리. 유지연 기자

스위스 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샤슬라 화이트 와인. 유지연 기자

스위스 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샤슬라 화이트 와인. 유지연 기자

미식가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건 스위스 와인이다. 스위스 와인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자국 소비량이 대부분으로, 수출은 단 1%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른 유럽 와인보다 덜 알려졌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자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토종 포도 품종인 샤슬라(chasselas)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대표적인데, 단맛과 신맛이 적고 깔끔한 맛이라 퐁듀 등 치즈와 곁들이기 좋다. 스위스 최대의 샤슬라 와인 산지인 라 꼬뜨(La Cote) 지역의 대표 와이너리 모르쥬(Morges)에서 만든 ‘모르쥬 비에이 비뉴’가 2016년 최고 샤슬라 와인으로 선정됐는데, 바로 이 와인이 ‘스위스 하우스 코리아 2018’의 공식 와인이다. 이만하면 스위스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스위스 하우스에 들러야할 좋은 핑계가 된다.

날씨가 추운 스위스의 나무는 단단해 질이 좋다. 스위스산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홀겐글라러스 가구로 스위스 하우스를 단장한다. 유지연 기자

날씨가 추운 스위스의 나무는 단단해 질이 좋다. 스위스산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홀겐글라러스 가구로 스위스 하우스를 단장한다. 유지연 기자

스위스다운 것을 보여주는 데는 스위스의 클래식 가구도 한몫한다. 스위스의 특산품 중 하나가 추위에 단련된 단단한 나무다. 하우스 전체가 스위스산 원목으로 꾸며질 뿐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가구 역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구 회사(1880년 설립)인 홀겐글라러스(Horgenglarus)의 원목 의자와 테이블이다. 스위스는 추운 날씨 덕에 나무가 단단하게 자라 목재 가구의 퀄리티가 우수하다. 홀겐글라러스는 이런 품질 좋은 스위스산 나무를 통째로 구부리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가구 회사로, 한 세대를 건너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한 제품을 생산한다. 건축가를 비롯해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어 100년 넘게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를 쌓아온 가구 회사이기도 하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브랜드지만, 유럽의 클래식 가구에 대한 니즈가 높은 한국 시장의 관심도를 반영해 공개 입찰을 통해 선정됐다고 한다.

스위스 길거리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따뜻하게 데운 와인 등도 맛볼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스위스 길거리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따뜻하게 데운 와인 등도 맛볼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스위스 하우스에는 아이스 링크도 마련된다. 방문객들은 자유롭게 아이스하키를 체험할 수 있고, 내셔널 하우스가 자리잡은 용평스키장에서 스키와 스노우보드 레슨까지 받을 수 있다. 하우스 마당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처럼 작은 특산품등을 파는 마켓도 운영된다. 스위스 전통 겨울 음료인 데운 와인(뱅쇼)이나 전통 스위스 게임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로봇 체험 등 기술 강국 면모도 

음식과 가구·놀이 뿐만이 아니다. 마치 박람회라도 온 것 마냥 최신 기술 체험도 할 수 있다. 특히 로보틱스 기술이 눈길을 끈다.
스위스는 로보틱스 분야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 강국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 Zurich)이 이 분야 최고다.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사족 보행 로봇 ‘애니멀(ANYmal)’과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스스로 위치를 지각해 움직이며 조밀한 표면 재구성(맵핑)이 가능한 드론 등 최신 로봇 기술을 연구한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로보틱스 연구실에서 선보인 사족 보행 로봇 '애니멀.' 공간 지각, 장애물 파악은 물론 안정적 컨트롤 및 보행이 가능해 로봇 팔을 달면 재난 현장 등에서 인명 구조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로보틱스 연구실에서 선보인 사족 보행 로봇 '애니멀.' 공간 지각, 장애물 파악은 물론 안정적 컨트롤 및 보행이 가능해 로봇 팔을 달면 재난 현장 등에서 인명 구조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지연 기자

이런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2016년 10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최첨단 보조 로봇을 이용해 역량을 겨루는 대회다. 평창 스위스 하우스에서는 바로 이 사이배슬론 경기 종목이 시연될 예정이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사이버애슬론 담당 롤랑 지그리스트(Roland Sigrist) 공동 디렉터가 바이크 레이스(bike race) 기술을 선보이고 방문객들에게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취리히 사이배슬론 대회에 참가했던 한국팀의 기술도 시연된다. 연세대학교 김종배 교수(척수장애) 팀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애물 피하기, 언덕 오르기, 울퉁불퉁한 표면 지나기 등을 겨루는 종목 등을 시연할 예정이다.

올림픽에서 국가 위상을 높이는 것은 단지 금메달의 개수 뿐만은 아니다. 광활한 올림픽 경기장 내 관람객들을 붙잡는 경쟁력 있는 내셔널 하우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스포츠 외교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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