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큰 자문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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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거의 국정자문회의가 새 헌법에 따라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이름으로 곧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전직대통령을 의장으로, 전임 대통령·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과 각계 원로를 위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이 회의는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구로서 국정에 대한 이들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자는데 목적이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 기구의 조직이나 구성은 대통령에 대한 자문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면 족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최근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 안은 자문기구로서는 지나치게 큰 사무처를 두고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원로회의로 새 출발을 하고 사무처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청와대 비서실과는 독립해 기구를 짜야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나 장관급의 사무처장을 비롯, 2명의 차관급을 포함해 모두 48명 외 공무원을 두도록 한 것은 지나친 것 같다.
이것은 그전 국정자문회의가 차관급공무원을 사무처장으로 하여 모두 16명의 정부를 두도록 하면서 실제운영은 대통령비서실의 지원으로 정원을 다 채우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기구팽창이다.
또 사무처장·차장 등의 직급도 다른 기관과 비교해 균형이 맞는지 의문이다.
장관급의 사무처장을 갖는 것은 현재 입법·행정·사법부의 3부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등도 헌법기관이지만 이런 기관의 사무처장 또는 사무총장의 직급은 차관급이다. 국가원로자문회의가 이들 기구보다 더 상급기구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직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이런 직급상향과 기구팽창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정부가 원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직전 대통령이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하고 퇴임 후에도 보람있게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나 그것은 원로회의사무처의 기구와 직급으로 배려돼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고위직 공직자와 큰 기구가 있어야 원로자문회의가 원활히 운영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껏 국정자문회의는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제5 공화국정부에서도 사실 이렇다 할 실적을 남기지 못했다. 정례적으로 회의를 열어 주요정책에 관한 정부측 보고를 듣고 토론을 벌이긴 했지만 국민의 기억에 남을만한 기여는 별로 없었다.
이렇다 보니 5공화정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기와 더불어 이 제도자체에 대한 일반의 평가 역시 신통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원로들이 활발하게 국정을 토론하고 얼마나 탁견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느냐는 것과 대통령이 얼마나 이 건의를 존중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무처공무원의 직급이나 숫자에 따라 자문회의의 토론이 더 활발해지고 더 훌륭한 건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원로회의의 활성화를 생각한다면 기구팽창이나 직급상향보다는 원로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좋은 의견을 과감히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정부를 선거공약으로까지 내세워놓고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사무처를 만들려는 것은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원로회의측으로서도 혹시 위인설관식의 직제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국정자문회의처럼 일반의 관심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시대의 진운이나 민심의 소재를 의식하는 실질적인 기능발휘를 스스로 다짐할 필요가 있다.
아직 시간여유와 남은 절차가 있는 만큼 정부는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재검토해 불필요한 오해의 여지는 시정하는 노력을 보이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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