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여성들 "취업 어렵다고? 그럼 창업하지, 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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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불가능이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항구인 지다에 사는 파티마라는 여성이 금융회사인 ALJ에 융자를 신청하면서 한 말이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에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창업하는 여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여성 창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 조그만 가게에서부터 큰 공장까지 진출 분야도 다양하다.

다자이너인 나왈 아담의 사례를 보자. 이 여성은 그동안 집에서만 옷을 만들어 왔다. 사우디에는 이렇다 할 패션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왈은 지난해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했다. 그는 "고객들이 내 옷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엠프레스 패션하우스'라는 매장 겸 회사를 최근 지다에 설립했다. 헤어 디자이너인 나왈의 동생도 같은 매장에 공간을 마련했다.

여성 창업이 이렇게 활발해진 이유는 취업이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교사 등 소수의 전문직 여성이 보건이나 교육 관련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뿐이다. 그래서 창업을 통해 사회활동을 하려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은 교육이다. 사우디는 수십 년간 평등 교육정책을 펴 대학을 마친 여성이 200만 명이 넘는다. ALJ의 대출 담당 이브라힘 바드우드는 "남자들보다 고용기회가 적은 여성들이 직접 창업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드우드는 "대출 신청자 가운데 여성이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여성이 대출을 신청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무려 3500명의 여성이 융자를 신청했다.

최근의 여성 창업 분위기는 사우디의 '제2 경제 붐'과도 관련이 있다. 올해 사우디의 석유수출액은 약 1600억 달러(약 16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게다가 산업 다각화를 추구하는 사우디 정부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산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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