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일 의원 허위 폭로의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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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에는 치욕을 무릅쓰고 "자민당에 사죄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6개 일간지에 싣기로 결정했다. 정권교체를 장담하던 호기는 온데간데없다. 일을 이렇게 망친 건 한 건의 허위 제보였다. 전말은 이렇다.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민주당의 나가타 히사야스 의원이 폭탄 발언을 했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사장이 자민당 간사장의 아들에게 3000만 엔을 송금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가를 뒤흔들 만한 메가톤급 폭로였다. 그 증거로 호리에가 직원에게 송금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긴 e-메일 사본을 공개하던 나가타 의원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문제의 e-메일은 하루 만에 조작된 메일로 드러났다. 나가타 의원은 출처에 대해 "잘 아는 프리랜서 기자로부터 입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기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민주당은 자체 조사를 거쳐 "e-메일의 진위 확인과정이 미흡했다"고 시인하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파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의 사무총장 격인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과 원내총무 격인 국회대책위원장이 당직을 내놓았다. 그래도 당 안에선 이대로는 내년 참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마에하라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당사자인 나가타 의원은 국회 윤리위원회 결정에 따라 의원직을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끈질기다고 할 정도로 엉터리 폭로의 책임을 따지는 일이 3주째 계속되고 있다.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필경 '아니면 말고'식으로 흐지부지되지 않았을까. 한탕주의 폭로 경쟁은 한국 국회에선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사과를 하고 응분의 책임을 졌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적어도 무책임한 폭로에 관한 한 일본에 비해 아직 한국 정치가 후진적이라는 증거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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