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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격노' 알려진 뒤 갑자기 '이해찬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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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기우 교육부 차관이 7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와 관련한 해명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이집트에 있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가 '골프 로비 미수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당국의 보고에 격노하고 6일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 대통령과 실세 총리라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례없는 긴장 국면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노 대통령은 점차 고뇌에 빠져들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고민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 총리를 교체할 경우 분권형 국정운영의 틀이 헝클어지게 된다. 일상적인 국정과제는 총리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포함한 굵직한 사안을 챙기겠다는 원칙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조직 장악과 업무 추진 능력이 뛰어난 이 총리를 대체할 마땅한 후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도 난점이다. 그렇다고 '얼굴 총리'체제로 간다면 집권 후반기 국정관리에 허점이 생길 공산이 크다.

둘째, 이 총리를 퇴진시킬 경우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노무현식 권력관리 방식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정부는 이 총리가, 당은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맡겨 적당한 긴장 속에 안정감을 유지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구상이 흐트러지게 된다.

이런 노 대통령의 고민은 빠른 속도로 청와대와 정부에 전파되고 있다. 7일 일제히 '이 총리 구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부적절한 골프가 잘못됐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총리를 교체할 정도의 사안인지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이 총리의 유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처음이다. 그러면서 그는 "노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중시한다. 골프모임에 로비는 없었다"고 적극 해명했다.

골프모임에 동행했던 이기우 교육부 차관도 "(골프모임에서) Y제분의 과징금 얘기는 전혀 안 나왔다"며 "(이 총리가) 일부러 부산까지 가서 그런 의혹을 살 분이 아니다"고 불거진 로비 골프 의혹을 해명했다. 그는 문제의 골프모임이 단순한 '친목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이런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노 대통령이 귀국 후 유임 결정을 내릴 경우에 대비한 공간 확보 차원으로 해석된다. 설령 교체하는 사태가 오더라도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평소 관계를 고려해 모양새를 갖춘다는 의미도 있다.

이 총리 거취를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부 사정도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계파 간 갈등 소지까지 감지된다. 정동영 의장 중심의 주류 측은 이 총리 사퇴를 기정사실로 밀어붙이고 있다. 주류 측이 고려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골프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지방선거에서 치명상을 입을 거라는 위기감이다. 둘째, 이 총리는 정 의장과 잠재적 대권후보 경쟁자라는 시각이다.

특히 이 총리는 정 의장 측과 각을 세워온 유시민 복지부 장관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 총리가 타격을 받을 경우 반사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정 의장 측이 골프 파문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근태.김두관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측의 입장은 다르다. 김근태계의 맏형인 장영달 의원은 "일관된 국정운영을 위해 총리를 바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주류 측은 이 총리가 지금 낙마할 경우 정 의장 독주체제가 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반면 이 총리가 유임될 경우 지방선거는 더 어려워질 수 있지만 패배의 책임은 고스란히 정 의장이 안아야 한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선거 패배는 아프겠지만 여당의 새판짜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당내에서 노 대통령이 이 총리를 유임시킬 경우 여권 내 분화를 촉발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 총리 문제로 당장 적전분열을 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날 "이 문제에 대한 당의 입장은 지도부에 일임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는 내용의 e-메일을 전 의원에게 발송했다. 아직도'3.1절 골프'파문의 끝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이수호.이상언 기자 <hodori@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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