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먼저 해놓고 욕하는 일본,욕하고도 따라하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치고 받기, 주거니 받거니.

3년전 일본 '검증'한다며 고노 담화 의미 훼손 #'전문가 검증' 형식 동원해 정부 주장 편 것 #이번엔 한국이 '검증'앞세워 비공개 부분 공개 #"일본 욕했던 한국이 같은 방법 쓴 건 아이러니" #

27일 결과 보고서를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테스크포스(TF)’의 활동은 2014년 한일 관계를 뒤흔들었던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문건이다.

고노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중앙포토]

고노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중앙포토]

물론 이번 위안부 합의의 경우 국가간의 외교적 합의가 검증의 대상이고, 고노담화의 경우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담화가 검증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전 정부에서 이뤄진 일에 대한 검증이라는 점에서도,또 “TF의 보고서가 정부입장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설명처럼 외부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형식을 통해 사실은 정부가 하고 싶은 주장을 간접적으로 폈다는 점에서 그 의도에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양국 전문가들 사이엔 “3년전 ‘검증’이라는 방식을 통해 고노 담화의 무게를 훼손하려 했던 일본이 이제와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측의 검증을 비난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또 3년전 고노담화 검증을 비판하며 ‘아예 외교를 하지 말자는 거냐’고 비판했던 한국이 비슷한 방식을 동원한 것도 모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4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을 비판하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 18명 명의의 서한 사본. 서한은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는 발표 시점이나 내용면에서 유감스럽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중앙포토]

2014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을 비판하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 18명 명의의 서한 사본. 서한은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는 발표 시점이나 내용면에서 유감스럽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중앙포토]

특히 양국간 외교적 교섭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TF의 보고서가 공개한 위안부 합의의 ‘비공개’부분엔 양측이 합의했던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때 응답요령’까지 포함돼 있다.

응답요령엔 기자들이 합의 문안 중 ‘(일본 정부의)책임’에 대해 물어올 경우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음’이란 표현 그대로이며,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로 답변키로 양국이 조율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고 TF는 밝혔다.

3년전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당시의 보고서가 "고노담화 발표직전 일본측이 ‘양국 정부가 문안을 조정했다는 것을 언론에 일절 밝히지 말 것’을 제안했고, 한국도 이를 받아들이며 ‘발표 직전 팩스로 발표문을 받은 것 처럼 하겠다’고 답했다”고 적시해 논란을 일으켰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정부는 검증 보고서 발표에도 불구하고,“고노담화는 계승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소위 말하는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문장을 보고서에서 두 번씩이나 사용하고,"고노담화의 문안은 한국 정부와의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조정에 의한 것"이라며 마치 한국이 떼를 써서 얻어낸 결과물처럼 고노담화의 의미를 훼손시켰지만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워 "그래도 계승한다"는 꼼수를 쓴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보고서 발표뒤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