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문화

세대를 넘어서는 삶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세대 간 단절이 점점 깊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 원인을 주로 젊은 세대에게서 찾는다. N세대, 디지털 감성, ○○족, △△스타일 등의 이름으로 범주화하면서 날로 생소해지는 사고방식과 정서, 그리고 생활양식을 부각시킨다. 물론 그런 요소들이 엄청난 차이를 빚어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개방적인 어른들은 젊은 세대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그 '코드'를 읽어내려 애를 쓰고, 거기에 자신을 맞춰 가는 유연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경험 세계와 언어만으로는 세대의 장벽을 뛰어 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보다 보편적 소통의 기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문화적 이질화는 공동의 체험이나 활동의 영역이 사라진 데서 비롯된다. 현대사회에서 일터와 배움터와 삶터가 제각각 분리되면서 아이들은 세상에 관한 지식과 이미지를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 얻는다. 그리고 어른들의 생업 활동은 아이들의 시야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부모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 현장을 접하지 못하기에 그 권위에 대한 경외감도 막연하다. 그리고 어른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설계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세대 간의 대화가 메마르게 되는 것은 그 안에 삶이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자신의 내면은 감춘 채 간섭하고 훈계만 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부모와 자녀 관계는 피상적으로 겉돌거나 상투적인 잔소리로 경직돼 간다. 이제 근본적인 동기를 바꿔 보자. 가끔은 살아가면서 겪는 애환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털어놓아 보자. 아이는 부모가 겪는 삶의 드라마에 조금씩 공감하면서 철이 들어간다. 어려움을 꿋꿋하게 뚫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으로서의 부모를 발견하고, 또한 거기에 자아를 투영한다. 어른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어버이의 인생은 자녀들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콘텐트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교류는 학교 교육이 채워 주지 못하는 실물 감각을 키워 준다. 예를 들어 늦은 밤 술자리에서 세계화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아버지, 그 시간에 학원에서 그 개념을 지루하게 암기하는 아이, 그들이 집에 마주 앉아 토론을 벌이면 즐거운 학습이 될 것이다. 때로는 아이가 부모가 일하는 직장에 찾아가 업무 현장을 참관하는 것도 흥미로운 체험이 될 수 있다. 주5일제 근무와 수업이 확대되면서 늘어난 자유 시간의 창조적 활용 방안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지금, 세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남의 레퍼토리를 멋지게 구상해 보자. 삶의 중심에서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 보자.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