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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무시당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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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대를 받고 왔다.”
“아니다. 환대를 받고 왔다.”

 사안은 같지만 시선은 같지 않다. 소란하고, 비능률적이며,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민주주의라서 의견의 불일치가 자연스러운 것이긴 해도, 이것이 우리 내부에서 벌어진 우리끼리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와 국가 간에, 그리고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통치자가 개입된 문제이기에, 그냥 못 본 척 넘어가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에 대해 결례로 점철된 의전과 일정,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알맹이 없는 합의, 중국 경호원들의 한국 기자 폭행과 진상규명 요구를 무시하는 중국 당국의 오만한 태도 등은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많은 한국 국민들을 불편하게 했다.

 개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개는 보통 밥을 주는 사람에게 가장 살갑게 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밥을 주지는 않더라도 틈나는 대로 함께 놀아주는 사람, 가족 간 서열-개가 파악하는 서열이다-이 높아도 서열이 낮은 다른 가족들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돌봐주는 주인에게 개는 절대적인 복종의 자세를 취한다.

 금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 고향 양산의 사저를 방문했을 때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반려견 마루가 너무 좋아 벌렁 뒤집어 진 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그때 이 칼럼을 통해 문재인이라는 인간의 진정성이 개를 통해서 엿보인다고 했다. 단 한번이라도 자신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개는 절대로 자신의 신체 중 가장 취약한 부위인 배를 보여주지 않는 본능적인 조심성이 있으므로, 저렇게 ‘날 잡아 잡수~’하며 벌렁 뒤집어졌다는 것은 그 개의 주인이 기분이 좋든 나쁘든 평소에 일관되게 선량하게 대해준 증거라고 했다.

2017년 5월 오랜만에 보는 주인인 문재인 대통령을 맞아 반려견 마루가 벌렁 드러누웠다.[중앙포토]

2017년 5월 오랜만에 보는 주인인 문재인 대통령을 맞아 반려견 마루가 벌렁 드러누웠다.[중앙포토]

 세월호 진상조사에 불만을 가진 유가족의 단식을 말리러 갔다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같이 단식에 들어가기도 한 그의 감성은 그 행위의 적정성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는 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사람 하나는 진국이라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머리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문재인 의원이 2014년 8월 20일 38일째 단식중인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김영오 씨의 단식을 말리러 갔다가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중앙포토]

문재인 의원이 2014년 8월 20일 38일째 단식중인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김영오 씨의 단식을 말리러 갔다가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중앙포토]

 중국 방문에서 돌아온 뒤 문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물려받은 외교 공백을 메우고 무너진 관계를 복원했다”고 만족해하면서 각료들에게 “방중 성과를 적극 홍보하라”고 지시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경제성장률을 0.2% 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관광업에 매일 300억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다. 경제적 손실을 생각하면 이번에 한 게 너무나 잘한 일”이라며 이번 순방의 가장 핵심적 성과로 “사드에 따른 경제 문제가 해소된 것”이라며 홀대론을 일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노영민 주중대사 부부와 함께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요우티아오), 두유(도우지앙)을 주문해 식사를 하고 있다.혼밥 논란에 불을 당긴 이 사진을 놓고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문대통령이 "13억의 중국 인민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노영민 주중대사 부부와 함께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요우티아오), 두유(도우지앙)을 주문해 식사를 하고 있다.혼밥 논란에 불을 당긴 이 사진을 놓고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문대통령이 "13억의 중국 인민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중앙포토]

 문 대통령과 정부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산둥성의 관광 주무 부서인 여유국(관광국)이 20일 내년 1월1일부터 한국 단체관광을 잠정 중단한다고 해당 지역의 여행사들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산둥성 뿐만 아니라 베이징 지역의 한국행 단체관광도 막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중 정상 회담이 끝난 지 불과 6일 만에 사드에 따른 양국 간 경제 문제가 해소된 ‘증거’인 중국인들의 한국 단체관광을 다시 금지한 것이 된다. 환대를 받고 왔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보도가 나오자 중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 고 잡아뗐다.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중국 정부로부터 단체 여행 재중단 통보를 받은 여행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중국의 이런 행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지난 3월 한국행 단체 관광이 중단될 때도 중국 당국은 이런 태도를 보이며 어물쩡 넘어갔다. 롯데마트도 이렇게 당했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롯데는 단 한 마디 그 어떤 공식적인 이유를 듣지 못하고 중국사회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하다가 결국 마트 사업을 접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문재인 정부는 중국 당국이 왜 돌변했는지 설명조차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핵심 인사는 우리 업계의 계속되는 고통은 외면하면서도 “한국행 단체 관광을 중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사실 관계 확인을 하지 않았느냐”며 우리 국민보다 중국 외교관의 말에 더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환대론’을 주장하고 싶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영논리에 따라 말의 의미조차 달라지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이 사회는 결국 말을 잃고, 신뢰를 잃고, 사람도 잃게 될 것이다.

2016년 말 중국인 단체 관체관광객으로 붐비던 서울 명동의 한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말 중국인 단체 관체관광객으로 붐비던 서울 명동의 한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내가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상대방도 진심으로 나를 대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믿음은 인간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흠잡을 게 못 된다. 문재인이라는 개인의 자격으로, 단식의 고통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어려움에 동참해 동조단식을 한다거나,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일관되게 반려인의 역할에 충실한 덕목 등은 누가 이렇다 저렇다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의 진정성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개인 문재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의 진정성이나 호의가 중국이란 나라와의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시절 문재인 후보가 서울 신촌 아트레온에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당시 문 후보는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중앙포토]

2012년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시절 문재인 후보가 서울 신촌 아트레온에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당시 문 후보는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사드를 놓고 한국 정부가 먼저 ‘3불’을 선언하면 중국 역시 진정성을 가지고 호응할 것으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중국의 역할을 논의하는 협상 과정에서 효과적인 전략적 옵션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이런 주요 정책을 선심 쓰듯 앞뒤 재지 않고 상대에게 덥석 안겨준 이 선택은 진정성의 호환 가능성을 기대한 순진함의 상징이다. 순진한 외교라는 말은 뜨거운 얼음이란 말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국익의 차원에서 순진함은 종종 재앙 그 자체고 현재 한·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 증거다.

 북한이 2012년 중국 학자의 도움을 받아 ICBM의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정부의 지시로 민간인의 외국 관광이 간단하게 중단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에서 영업하던 롯데가 그렇게 망했다. 중국 학자가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는 바로 중국 당국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다. 문제의 당사자에게 문제 해결의 옵션을 조건 없이 내준 선택은 누가 봐도 순진했다.

 내가 착하게 굴면 상대방도 착하게 굴 것이라는 기대는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국가의 운명을 그런 불확실성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그런 기대는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바보 취급당하기 딱 좋다. 개인 간의 거래에서도 그런데 국제관계에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불순한 의도가 빤히 보이는 상대방을 향한 진정성이나 호의는 이제 그만 거둬들여야 한다. 인구 5000만 명에, 세계 무역규모 9위의, 결코 작지 않은 나라의 국가원수를 손님으로 초대해 놓고 차관보급 인사가 공항 영접을 하고, 방문 기간 10번의 식사 중 8번을 혼밥하게 하며, 공동성명 발표도 마다하고, 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취재 중인 기자를 부당하게 폭행한 것도 모자라 이제 회담이 끝난 뒤 6일 만에 다시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하겠다고 해놓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상대방에게 계속 기대를 갖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굴종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 호의가 권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마치 식민지를 대하는 종주국처럼, 한국인들에게 만큼은 어떻게 해도 된다는 중국의 근거 없는 오만은 정말 기분 나쁘다. 중국의 이런 오만을 부추기거나 빌미를 제공하는 그 어떤 호의나 진정성도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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