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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올해의 미국이 만든 영화다"

중앙일보

입력

‘더 포스트’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

‘더 포스트’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역사적 사건을 거울 삼아 현실 정치에 발언하는 영화 ‘더 포스트’(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를 내놓았다. 1971년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국방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다. 이 모든 결정을 내린 이는 워싱턴 포스트의 여성 대표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영화는 회사를 물려받은 딸에서 어엿한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박진감 넘치게 그린다. 뉴욕에서 스티븐 스필버그(71) 감독을 직접 만나 영화에 둘러싼 절실한 바람을 들어 봤다.



-내년에 개봉할 ‘레디 플레이 원’을 진행하면서 이 영화를 완성했다. 올해 안에 만들어 개봉한다는 급박한 계획이었는데,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우선 감독이라면 항상 좋은 시나리오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더 포스트’의 시나리오는 진행 중인 작업을 중단하게 할 만큼 훌륭한 시나리오였다. ‘더 포스트’는 1970년대 여자의 리더십을 정의한 이야기여서 더 특별했다. 주인공 그레이엄은 가족이 경영하는 신문사 워싱턴 포스트를 물려받은 대표였지만 여성이라는 큰 결함이 있었다. 영화 초반 그레이엄은 남자들로 가득한 회의실에 들어간다. 그녀는 말할 주제를 준비했지만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레이엄의 경영을 모두가 의심하는 상황에서, 베트남 전 폭로 문서 게재는 그녀를 리더의 자리로 밀어 넣는다. 1971년과 2017년의 정치적 유사성을 떠나서, 여자가 리더로 거듭나는 순간을 담은 이야기라 끌렸다.”

-촬영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는데.
“‘레디 플레이 원’ 후반 작업 때문에 스케줄을 다 비워 놓은 상황이었다. 2000개의 특수효과 장면을 만들어야 해서 남는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람들의 위대한 순간을 그리고 싶어 시간을 쪼갰다.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는 전략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 폭로전은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덜 유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워터게이트로 이어지며 부정한 대통령이 사임하게 됐다.”

‘더 포스트’

‘더 포스트’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 캐스팅은 어떻게 가능했나. 친구로서 도와준 것인가.
“절대 아니다.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 메릴과 톰보다 나은 배우를 생각할 수 없었다. 다행히 둘의 일정이 맞았고 톰은 고(故) 벤 브래들리 기자와 알던 사이라 더 도움이 됐다.”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기도 하다. 현재 할리우드에선 여성들의 성추행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쏟아지는 증언들에 놀랐나.
“놀랐어야 했을 텐데 놀라지 않았다. 할리우드가 여성 운동에 있어 분기점이 되는 진원지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여성들이 앞으로 나와 힘겹게 자신이 겪었던 성추행을 폭로하는 순간이 왔고, 이 모든 행동이 사방으로 영향을 미쳤다. 성추행은 단지 할리우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여성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들이 경험을 이야기할 때마다 내 희망과 신념을 지키는 것에 용기를 얻는다.”

‘더 포스트’

‘더 포스트’

-언론을 억압하는 정부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2017년의 미국 언론의 자유는 힘겹게 서 있다. 우선 사람들에게 뉴스가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 사실(Alternative Fact)’ ‘가짜 뉴스’ 같은 문화적 현상을 경험하다 보니 닉슨이 워싱턴 포스트를 막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있음에도 닉슨은 예술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사법 시스템을 이용했다. 지금의 정치와 심오한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현재 미국 시민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1971년에 내가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고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처음이다. 누구도 정치에서 도망칠 수 없다. 올해의 사회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더 포스트'는 어떤 영화?

‘더 포스트’

‘더 포스트’

‘더 포스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12주 만에 완성한 영화다. “인생을 통틀어 요즘처럼 혼란스러웠던 때가 없다”는 그는 현재 미국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을 격려하고 부패한 정부에 맞서기 위해 모든 일정을 미루고 ‘더 포스트’를 만들었다.

각복을 맡은 이는 신인 작가 리즈 한나. 그는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비즈니스 리더 리스트에 여성 최초로 이름을 올린 캐서린 그레이엄의 특별한 순간을 시나리오에 담았다. 여기에 ‘스포트라이트’(2015, 토마스 맥카시 감독)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가 조쉬 싱어가 합세해 전체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에 맞게 윤색했다.

1971년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라 불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국가 기밀문서를 공개해 정부의 위선을 폭로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이에 반발하며 법원을 통해 기밀문서 게재 금지 명령을 발포하고 언론의 입을 막으려 한다. 두 신문사는 정부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지만 결국 언론의 자유를 지켜낸다. 워싱턴 포스트의 대표 캐서린 그레이엄은 정부에 맞서 폭로 기사 게재를 허락하고 인생의 위기를 맞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레이엄이 정의를 위해 돌진하는 열혈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이제 막 신문사 운영에 눈을 뜬, 자신을 무시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여성 리더였다는 점이다. 그녀의 모든 인생을 걸었던 폭로 기사 게재 결정 덕분에 지방 신문사였던 워싱턴 포스트는 저널리즘 정신의 본보기가 되는 독립 언론사로 인정을 받는다. 중대한 결정이 개인을 바꾸고, 회사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더 포스트’는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가 최초로 함께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레이엄 역의 메릴 스트립은 수동적인 여성이 큰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톰 행크스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이자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인 벤 브래들리 역을 맡아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참여한 모든 사람이 2017년에 꼭 필요한 영화임에 동의해 완성한 수작. 고전 회화 같은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우아한 표현력이 더해진 새로운 여성영화가 탄생했다.

글=뉴욕=홍수경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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