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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아홉 살짜리 ‘마음의 키’ 훌쩍 키워주는 말 말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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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7 올해의 책 10'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마음 사전

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지음
창비 

[아동]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고 썼다. 엉뚱한 질문을 잘하는 아이가 아직 우리 마음속에도 있는 것일까.

박성우 시인의 책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 여든 개를 뽑았다. 감격스럽다, 귀엽다, 따분하다, 보고 싶다, 속상하다, 예쁘다, 조마조마하다, 후련하다, 흐뭇하다 등등. 그리고 각각의 말들을 활용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다행스럽다’를 실으면서 내용을 이렇게 짜 놓았다. ‘다행스럽다’의 어휘를 “생각보다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은 듯하다”라고 뜻풀이를 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경우를 그림으로 제시하고 “깜빡 잊고 숙제를 안 했는데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지 않네”라고도 설명했다. 마음 사전의 예시들이 산뜻하고 구체적이어서 아주 실감이 났다.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말을 익힐 수 있고, 그것을 상황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아이나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들어보면 너무 간단하고, 몹시 무뚝뚝한 경우가 많다. 마치 감정의 종류가 좋거나 나쁜 것, 이 둘만 있다는 식일 때도 있다. 감정 표현의 내용도 누구나 대동소이하고 비슷비슷하다. 마음에서 새싹처럼 생겨나는 감정을 대하면서도 ‘이 기분은 뭘까?’라고 의문을 갖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정이나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적도 없지만.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상세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다. 아이들은 무한과 대화하고, 그 마음은 무한을 향한다. 다만 그 어마어마하게 높고 큰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우리의 아이들이 모르고 있을 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경북 금릉군(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태화초등학교를 다니던 마흔 해 전의 어릴 적 나를 만났다. 빈집 마루에 앉아 있고, 숨바꼭질을 하고,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몽땅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숙제를 하고, 어린 동생을 돌보고, 엄마 아빠의 품에 포근하게 안기던 나를.

물론 그때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때 내가 사용한 감정의 어휘는 공깃돌의 수보다 적었고, 볼품이 없었다. 비 그친 후 하늘에는 어김없이 여러 빛깔의 무지개가 나의 머리 위로 떴었지만. 어릴 적 내 마음에는 새 친구가 오고, 시간이 낙엽처럼 쌓이고, 키가 기린처럼 커지고, 꿈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보다 높아졌지만.

아쉽게도 나는 감격스럽고, 귀엽고, 따분하고, 보고 싶고, 속상하고, 예쁘고, 조마조마하고, 후련하고, 흐뭇한 마음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러한 말들을 자유롭고 발랄하게 사용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다. 그 말들은 활짝 핀 나팔꽃 같을 것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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