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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짐' 어떻게 12시간이나…대한항공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A380 항공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A380 항공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항공이 자사의 비행기에 주인 없는 짐이 실린지도 모른 채 12시간 동안이나 비행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는 없었지만, 테러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아찔한 상황이었다.

30대 인도인A씨 짐만 부치고 비행기에는 타지 않아 #자신이 A씨 부인이라고 주장한 여성말 듣고 이륙 #탑승권에는 남성(MR),여성(MS) 분명히 구분돼 있어 #인천공항 경유때까지 대한항공은 '주인없는 짐'몰라

주인 없는 짐은 테러 예방을 위해 철저하게 규제된다. 기내 폭발 물질 등이 주인 없는 짐에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항공보안법은 탑승 수속을 하면서 짐을 부친 승객이 실제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경우 비행기 이륙시간이 지연되더라도 해당 승객의 짐을 내린 후 이륙하고, 만약 비행 중에 해당 승객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회항하거나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에 짐을 내리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항공 보안상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주인 없는 짐’이 어떻게 대한항공 비행기에 실렸고, 대한항공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탑승객이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 수하물 센터를 통해 탑승객의 비행기로 짐이 전달된다. 짐이 운반되고 있는 인천공항 수하물 센터. 함종선 기자

탑승객이 공항에서 짐을 부치면 수하물 센터를 통해 탑승객의 비행기로 짐이 전달된다. 짐이 운반되고 있는 인천공항 수하물 센터. 함종선 기자

경위는 이렇다.

지난 13일 오전 8시(현지시각,이하 동일)경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서 30대의 인도인 남성A씨를 포함한 일행 5명이 뉴질랜드에서 인천공항을 경유해 인도 뭄바이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10시 출발)에 짐을 싣고 탑승권을 발권했다. 그런데 이 중 A씨는 짐만 부치고 비행기에는 탑승하지 않았다. A씨는 14일 다른 항공편으로 뉴질랜드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탑승하지 않은 사실은 뉴질랜드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12시간 동안 모르다가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환승 수속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대한항공이 탑승자 숫자와 실제 탑승객 수가 다른 것을 뒤늦게 알고 법무부에 신고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우선 짐만 부친 A씨가 탑승하지 않은 사실을 대한항공이 어떻게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비행기 이륙 전 항공사는 탑승자 명단을 꼼꼼히 확인한다. 탑승 수속을 했지만, 아직 탑승하지 않은 승객은 공항 내 기내 방송을 통해 호출할 정도다. 가끔 공항에서 듣게 되는 ”000씨 000편에 빨리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안내방송이 그런 경우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A씨 자리에 앉아 있던 A씨의 부인으로부터 자신이 A씨라는 얘기만 듣고 비행기를 출발시켰다. 탑승 직전 탑승권 스캔 과정을 거쳐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승객이 누군지 드러난다. 따라서 탑승객이 스캔 되지 않은 이상한 상황이었는데도 대한항공 측은 자신이 A씨라고 주장한 여성의 말만 들은 것이다. 탑승권에는 남성(MR), 여성(MS)이 탑승객 이름 옆에 분명하게 표시돼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첫째 사항이다. 대한항공은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A씨가 짐만 부치고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점도 미스터리다. 출발 직전이라도 항공권을 취소하면 약간의 수수료를 제외한 항공권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 짐은 다른 일행을 통해 부치면 되고, 수하물 제한 무게 이상의 짐을 부치면 약간의 수수료를 더 내면 된다. 뉴질랜드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인도로 가는 항공편은 비행시간만 20시간 정도인 긴 여정이기 때문에 항공권 가격도 만만치 않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인도 승객이 왜 항공권을 취소하지 않았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행히 ‘주인 없는 짐’으로 인한 테러 등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대한항공에 국토교통부가 엄중하게 처벌할 예정이다. 국토부 김용원 항공보안과장은 “항공 보안은 구멍이 뚫리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처벌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며 “이번 대한항공 사고는 현재 조사하고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벌금형에서부터 관련자 징역까지를 놓고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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