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당 당협 물갈이,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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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유한국당이 17일 현역 의원 4명을 포함해 62명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하는 골자의 당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단 주목되는 건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8선) 의원과 중진 유기준(4선) 의원이 교체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탈당 권고 징계에 이어 ‘친박당’ 이미지를 벗는 쇄신 노력에 최소한도로 부응한 조치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이 요구해 온 개혁 수준에는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우선 서 의원과 함께 1순위 청산 대상으로 지목돼 온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진박’ 정치인 상당수가 교체 대상에서 빠졌다. 또 홍준표계로 분류되는 홍문표 의원이나 김성태 원내대표 등 당권파는 위원장직을 보장받거나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 반면, 김무성 의원 본인을 비롯한 김무성계 의원들이나 김용태·이종구 의원 등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공산이 큰 반골형 정치인들은 줄줄이 배제됐다.

감사 과정의 불투명성도 문제다. 당 지도부는 ‘정량평가를 통한 객관적 당무 감사’였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인 감사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 교체 대상에 오른 의원들의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그런 만큼 홍 대표는 조만간 공석이 될 62개 당협위원장직에 반드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지명해야 한다. 만일 홍 대표와 가깝거나 지역 등 연고로 얽힌 인사들에게 위원장직을 준다면 이번 당무 감사는 당의 혁신을 빙자한 홍 대표의 ‘사당 만들기’ 수순이었을 뿐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당에 요구되는 건 첫째도 둘째도 계파 논리를 벗어던진 사심 없고 과감한 개혁이다. 그래야만 지리멸렬한 보수의 존재감을 되살려 현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 이번 당무 감사는 제1 야당에 대한 그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부실 작품이다. 홍 대표와 한국당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