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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비트코인, 튤립, 바니타스, 그 이중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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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거품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 거품 터지기 전에 빨리 샀다가 차익 내고 바로 팔면 되지 않겠어? 나는 뼈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을 누구는 그냥 앉아서 며칠 만에 번다니 왠지 억울한걸?” 드디어 주변에도 이런 말을 하며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를 고민하는 지인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상인과 직공들도 그 말 똑같이 하면서 튤립 구근을 샀다가 망했다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상공업이 발달한 동네 사람들이었는데 바보여서 그런 일을 겪었겠어?”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의 얇은 귀도 살짝 움찔거리곤 한다.

암호화폐 열풍이 처절한 버블붕괴로 끝난 17세기 네덜란드 튤립광풍의 재현이라고 이미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경고했다. 비트코인을 ‘암호튤립,’ ‘튤립광풍 2.0’이라 비웃기도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심지어 “튤립 구근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보니, 설문에 응한 경제학자 96%가 비트코인이 버블 상태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아예 거래 금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거품이 있더라도 대안화폐로서의 잠재력과 저변의 블록체인 기술 때문에 지나친 규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지금 상태가 버블이 아니라는 극소수 의견도 있다.

 바니타스 정물, 1668,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1630-1693)작, 캔버스에 유채, 73x88.5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바니타스 정물, 1668,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1630-1693)작, 캔버스에 유채, 73x88.5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경고와 가능성을 들으며 양쪽 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팔랑거릴 때는, 튤립이 그려진 네덜란드 ‘바니타스’ 그림을 보면 좋다. ‘바니타스’는 ‘헛됨’ 또는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인데, 그것을 제목으로 한 정물화들이 17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다. 이런 정물화들은 화려하고 값진 물건들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해골을 함께 그려서, 인간이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죽음 앞에서는 부귀영화와 쾌락이 다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해골 외에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모래시계, 인간의 생명이 언제라도 꺼질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비누방울과 불 꺼진 양초, 죽음으로 덧없어질 각종 금은보화, 수입사치품 등이 등장하곤 한다.

그 중 주목할 게 튤립이다. 원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꽃도 단골 요소인데, 언젠가 시들 젊음과 생명의 상징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튤립의 경우, 특히 마리아 판 오스터비에크의 그림 속에 나오는 것처럼 흰 바탕에 붉은 줄무늬가 있는 희귀한 튤립의 경우(그림1), 부귀의 상징까지 겸한다. 튤립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수입된 ‘물 건너온, 있어 보이는 꽃’이라 유럽 부자들의 필수 사치품이 됐고, 마침 네덜란드가 유럽 교역의 중심으로 황금시대를 맞으면서 떼돈을 번 신흥부자들이 너도 나도 축에 빠지랴 사들이니 값이 뛰어올랐고,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걸 보고 소상인과 직공, 하인 들까지 가리지 않고 투자에 뛰어드니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네덜란드 튤립광풍이었다.

바니타스, 1640,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작, 판자에 유채, 28x37cm, 테세 박물관, 프랑스 르망

바니타스, 1640, 필리프 드 샹파뉴(1602-1674)작, 판자에 유채, 28x37cm, 테세 박물관, 프랑스 르망

그러다가 마침내 버블이 붕괴한 후 튤립은 허영과 헛됨, 즉 바니타스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상징이 되었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튤립은 세 가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첫째, 꽃으로서 언젠가 시들 생명을 상징하고, 둘째, 한때 집 한 채를 능가하는 가격의 재화로서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셋째, 터져버린 거품으로서 그런 부귀영화의 헛됨과 허영의 말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림2)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바니타스 그림이 이중적이며 모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주문한 것은 앞서 튤립광풍의 발단이기도 한 네덜란드 신흥부자들이었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그림 속의 사치품들은 주문자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정밀한 묘사는 보는 사람들에게 감각적 쾌락을 선사하고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림3) 그런데 다음 순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고 찰나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아마도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 그림을 보며, 부를 과시하고 더욱 쌓고 싶은 욕망과, 그러한 부귀영화는 거품 같이 꺼지는 헛된 것이라는 교훈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중용의 길을 추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1599-1652)작 , 캔버스에 유채, 67x86cm, 개인 소장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1599-1652)작 , 캔버스에 유채, 67x86cm, 개인 소장

튤립버블이 처참하게 붕괴한 이후에도 네덜란드인들은 튤립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 않았고, 튤립 구근을 모두 불태워버리지도 않았다. 튤립이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화를 보며 버블붕괴의 교훈을 되새기는 한편, 비이성적으로 투기를 하는 대신 합리적으로 부가가치 있는 튤립의 재배와 개발에 투자를 계속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날 네덜란드가 세계 최대 튤립 수출국이자 최대 화훼 수출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암호화폐를 대하는 경우에도 이런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