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논설위원이 간다

갈수록 힘 커지는 구글…비결은 블랙홀 같은 기술생태계

중앙일보

입력 2017.12.18 00:03

업데이트 2017.12.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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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가파(GAFA,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ㆍ아마존)’로 불리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4대 천왕은 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에 들어가 있다. 애플과 구글이 정상을 다투고 아마존과 페이스북이 3위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10위권 진입도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GAFA의 위력을 알 만하다. 이들 기업을 전 세계 IT산업의 지배자로 만든 건 초고속 반도체와 인공지능(AI)ㆍ빅데이터의 융합이다. 그런데 한국은 반도체 강국인데도 4차 산업혁명의 열등생으로 전락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최근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들의 쇼케이스가 열린 구글 캠퍼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 구글 서울 캠퍼스. 스타트업들의 기술경연이 펼쳐진 쇼케이스에 젊은 창업가들이 몰려들어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즉석에서 인재와 기술 융합을 위한 협업이 이뤄진다. 김동호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 구글 서울 캠퍼스. 스타트업들의 기술경연이 펼쳐진 쇼케이스에 젊은 창업가들이 몰려들어 아이디어와 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즉석에서 인재와 기술 융합을 위한 협업이 이뤄진다. 김동호 기자

구글 서울 캠퍼스는 2호선 삼성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일단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캠퍼스가 입주한 빌딩으로 들어서자 구글 캠퍼스로 바로 연결됐는데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여긴 많이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참가자들의 젊음과 그에 따른 생동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신입사원 티가 나는 얼굴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대략 30대 초반의 얼굴들이 주류였다. 40대 넘어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센터장의 경과 보고가 있었는데 역시 경쾌했다. 보고 내용 역시 한마디로 “구글 캠퍼스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이 이곳에서 6개월간 즐겁고 유쾌하고 재밌게 지냈다”는 거였다.
졸업 발표는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청바지나 후드티를 입은 창업자가 있는가 하면 티셔츠 차림도 있었는데 발표 스타일도 다 달랐다. 연단에 오른 창업자들은 무대 좌우로 오가면서 활력 넘치게 한 편의 쇼를 하는 것처럼 발표했는데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비즈니스 모델을 상당히 명확하게 설명했다.
경연에는 캠퍼스에 입주했던 6개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입주한 스타트업 중 한 곳도 낙오 없이 모두 졸업의 피니시 라인을 밟은 것이다. 아이디어는 이미 사업화 단계로 무르익어 있었다. 인간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반려동물 케어 플랫폼 ‘고미랩스’가 내놓은 반려동물 IT장난감은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000만 시대가 되면서 주인이 집을 비웠을 때 반려동물이 겪는 '분리불안증'을 개선하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야구공만 한 크기의 고미볼은 자율 주행이 가능해 반려동물이 혼자 놀 수 있다. 주인은 언제든 놀이 상태를 알 수 있다. 머신러닝 플랫폼 지원 회사 ‘래블업’의 발상도 대단하다.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소규모 기업도 AI가 필요하지만 기본 플랫폼이 없어 엄두도 못 내고 비용도 막대하다는 점에 착안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AI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화물운송을 연결해주는 ‘로지스팟’은 제3자 물류(3PL) 플랫폼을 사업화했고, ‘어메이저’는 셀카로 연기ㆍ댄스ㆍ패션 ‘배틀’을 겨루는 글로벌 동영상 콘테스트 플랫폼을 만들었다. 핀테크 자산관리 서비스 ‘에임’은 500만원만 있어도 자산을 관리해주는 국내 최초 모바일 자산관리 서비스 사업화에 나섰다. 이지혜 대표는 “최소 1억원이 있어야 가능했던 부유층 자산관리를 누구나 모바일로 손쉽게, 낮은 수수료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프라젠’은 증강현실(AR) 디스플레이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던 시야각을 기존 35도에서 120도로 넓히는 광학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구글은 이같이 성장 잠재력이 큰 스타트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심사를 통해 될성부르다 싶으면 6개월간 구글 캠퍼스를 무료로 사용하게 한다. 쇼케이스 행사장을 빠져나와 이들 6개 기업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쾌적하고 넓은 공간이 짠 하고 펼쳐졌다. 몇 걸음 더 들어가보니 눈길을 확 잡아끄는 영문 문구 앞에서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지름길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구글스러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구글의 이 같은 발상과 스타트업 육성 방식은 한국이 도전하고 있는 산업 구조개편과 혁신성장에도 손에 잡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는 구글이 생생히 보여주듯 기술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기술생태계는 곧 산업생태계를 의미한다. 박준규 로지스팟 대표는 “중소 화물회사가 사업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대형 물류회사와도 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라젠이 개발한 광각 프로젝션 기술은 대형 전기전자 기업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원 대상을 신산업과 창업으로 국한했다. 하지만 구글을 보면 ‘대기업 따로, 중소기업 따로’ 같은 정책은 없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세 배에 달하는 구글도 손톱만 한 스타트업부터 끌어모아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이다. IT기술은 산업마다 영역이 구분되는 굴뚝 산업과 달리 플랫폼 기반으로 모든 기술과 아이디어의 융합을 통해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생태계는 계속 갈라파고스화하고 있다. 대기업은 손발을 모두 묶어놓겠다는 기세로 정부가 총력을 다해 몰아붙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서도 문 대통령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공정거래문화를 확립하는 데 힘쓸 것을 강조했다. 반칙은 금물이고 정부가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유로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외면하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가로막아서는 혁신과 융합이 일어날 수 없다.
벤처업계에서도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이제는 대기업 혼자 혁신할 수 없고 개방형 혁신생태계와의 교류가 필수적”이라며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결합을 통해 상호보완적인 혁신생태계를 조성해야 글로벌 경쟁에 맞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자 간 공동 비즈니스와 인적 교류는 물론이고 대기업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합병(M&A)도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구글 서울캠퍼스 쇼케이스에 참가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하지만 구글 생태계를 보고나니 암담한 현실과 대조된다. 한국에선 기술탈취라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접촉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구글은 스타트업을 직접 데려다 키우며 지원하기도 하고 가능성만 보이면 곧바로 M&A에 나선다. 서울 캠퍼스에도 세계적인 벤처캐피털이 상주한다. 내부에서 키우고 밖에서 들여오니 블랙홀처럼 첨단 정보기술을 빨아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논란도 적지 않다. 한국에선 매출액을 공개하지 않고, 본사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과세 문제도 피해간다. 통신망 사용료 문제도 논란이다. 최근엔 자사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사용자 위치정보를 무단 수집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문제들은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혁신성장을 제대로 하려면 구글 캠퍼스부터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 블랙홀처럼 인재와 기술을 빨아들이고 있는지 구글 왕국의 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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