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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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총통이 기자회견을 했다. 세계외신들은 신기하다는 듯 그것부터 보도했다. 자유중국에선 도대체 건국이래 이런 일이 없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상상 못할 노릇이다.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존슨」대통령은 하루가 벌다 하고 기자회견을 했었다. 재임 5년 동안 그 횟수는 무려 1백58회나 기록했다. 쿠바위기다, 피그 만 사태다 해서 곡절이 많았던「케네디」대통령도 재임 3년에 65차례나 기자회견을 가졌다.
무슨 사단이 많을수록 기자회견을 자주 갖는 것이 미국의대통령이다.
독재국가와 민주국가가 비교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점이다. 독재국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면 쉬쉬하며 자꾸 덮으려 한다. 민주국가에선 거꾸로 어려운 일 일수록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지난해3월 미국에서 이란-콘트라 사건이 벌어지자「레이건」대통령은 4개월이나 미뤄 오던 기자회견을 부랴부랴 열었다. 그때 타임지에 따르면 「레이건」은 만사 제쳐놓고 꼬박 열흘동안 산장에서 두문불출,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보좌관들이 수집한 자료만 해도 서류로 30㎝나 쌓였다. 「레이건」대통령은 그 자료들을 모조리 탐독했다.
회견이 있기 3일전엔「베이커」수석보좌관이 대통령 앞에서 강의를 했고 다음날은 기자들이 물어 봄직한 문제 50가지를 따로 추려 모범답안을 작성, 하루 전엔 백악관소극장에서 보좌관들을 앉혀 놓고 2시간에 걸쳐 예행연습을 했다.
그것도 부족해 기자회견이 있는 당일 아침에도 2시간이나 똑같은 연습을 했다. 드디어 대통령은 옷차림을 가다듬고 얼굴에 분까지 바르고 나타났다.
미리 각본 같은 것이라도 있음직 한데 기껏 있다는 것이 작은 신문사의 기자에게 진땀나는 답변이 있고 나면 좀 말랑말랑한 질문을 해줄 수 없겠느냐는 정도다. 언젠가는 그런 양해가 이루어져 대통령에게도 귀띔이 되었다.「레이건」은 정작아무개 기자를 불렀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없었다. 기자들이 박장대소 한 것은 물론이다.
때로는 고약한 질문도 있다.『대통령각하의 따님이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아기를 갖게 되면 그래도 낙태를 반대하겠습니까』하는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이제 민주대통령이 탄생했으면 각본 아닌 진짜 기자회견이라는 것도 가져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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