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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짝사랑남을 다시 만난다면? 노래에 이야기를 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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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홍대 버스킹으로 시작해 10주년을 앞두고 0집을 발표한 좋아서하는밴드. 거리에서 밴드 이름을 묻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예요"라고 답한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9년 홍대 버스킹으로 시작해 10주년을 앞두고 0집을 발표한 좋아서하는밴드. 거리에서 밴드 이름을 묻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예요"라고 답한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파고드는 ‘덕질’이 곧 직업이 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좋아서하는밴드(좋아밴)’는 일찍이 그 꿈을 이룬 성공적인 케이스다. MBC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조준호(퍼커션·우쿨렐레)가 오랜 벗 손현(기타)과 의기투합해 안복진(아코디언)과 백가영(베이스)을 영입해 2009년 홍대 거리 버스킹을 시작한 이래 9년째 밴드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말 백가영이 ‘안녕하신가영’으로 독립해 나가면서 3인조가 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음악이 좋아서 업으로 삼고 있으니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0집 '우리가 되기까지' 발매한 좋아서하는밴드 #이병훈 음악감독과 함께 뮤지컬처럼 13곡 엮어 #"내가 쓴 노래 화자와 시점 따라 재탄생 신기" #신문배달 등 현장음 직접 녹음해 완성도 높여

지난 3월부터 1~2곡씩 발표해 최근 완성된 0집 ‘우리가 되기까지’ 역시 좋아밴이니까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2013년 1집이 발매되기 전 거리에서 발표했던 17곡 중 11곡을 추리고 거기에 2곡을 더해 총 13곡을 담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음반을 만든 것이다. 서울 합정동 합주실에서 만난 좋아밴의 안복진은 “정식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게 아니어서 카페나 거리에서 들을 때마다 곡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며 “10주년이 되기 전에 다시 녹음해서 선보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좋아서하는밴드는 본래 베이스, 건반, 타악기 등 주력 악기가 있었지만 소규모 공연에 최적화하기 위해 기타, 아코디언, 우쿨렐레를 주로 연주한다.[사진 웨스트브릿지]

좋아서하는밴드는 본래 베이스, 건반, 타악기 등 주력 악기가 있었지만 소규모 공연에 최적화하기 위해 기타, 아코디언, 우쿨렐레를 주로 연주한다.[사진 웨스트브릿지]

마음만 먹고 있던 터에 이병훈 음악감독을 만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해어화’ ‘쎄시봉’ 등 음악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이 스토리를 입혀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각자 자기가 만든 노래는 직접 불러온 이들에게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방식이었다. 스물여섯 김창수와 신유미라는 남녀주인공이 생겨났고, 초등학교 때 서로 호감이 있던 이들이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에 대한 온도 차를 실감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회사원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아침엔 신문배달하고 저녁엔 버스킹하는 남자와 광고회사에 취직해 늘상 야근에 시달리는 여자라는 설정은 좋아밴표 생활밀착형 가사에 힘을 불어넣었다. ‘고장 난 듯한 골드스타 세탁기가 아직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옥탑방에서’)라거나 ‘이 우유가 상할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유통기한) 같은 공감하기 쉬운 가사로 일상의 BGM 같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바쁘면 얘길 하지 내일 봐도 되는데” 등 중간중간 삽입된 대화로 전체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1곡 단위가 아닌 음반 단위로 반복재생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좋아서하는밴드는 "이병훈 음악감독과 함께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 0집은 내레이션과 연기가 어우러져 듣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 웨스트브릿지]

좋아서하는밴드는 "이병훈 음악감독과 함께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 0집은 내레이션과 연기가 어우러져 듣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 웨스트브릿지]

조준호는 “분명 저희 경험담이었는데 주인공과 이야기가 더해지니 전혀 다른 노래로 재탄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딸꾹질’은 고백을 앞둔 소심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아이들 연기가 등장하니 어릴 적 짝사랑을 회상하던 노래가 됐고, 손현이 불렀던 ‘좋아요’는 화자가 여자로 바뀌면서 안복진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처음엔 제 노래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는데 여자 버전으로 들으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더라고요.”(손현)

이병훈 감독의 지휘 아래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문배달하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직접 지인들에게 오토바이를 수배하기도 했다. “신문을 한움큼 사서 오토바이를 타서 던지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잘 안 나더라고요. 그러니까 딱지치기하듯이 더 세게 던져보라고 하니 진짜 되더라고요. 신기했죠. 저희가 언제 붐 마이크 들고 돌아다니면서 계단에서 내려오는 구두 소리를 녹음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따 보겠어요. 정말 한땀 한땀 만든 거예요.”(조준호)

1년 버티기도 힘들다는 인디신에서 이들이 10년을 바라보며 장수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좋아서’였다. 조준호는 “사실 빚을 내서 음반을 내는 팀이 꽤 많다. 하지만 저희는 봄여름가을은 거리에서 노래하고, 겨울엔 작업하는 식으로 농사짓듯 일해서 자금을 모았기에 계속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내년에 씨 뿌릴 건 안 먹지 않냐”는 지론대로 공연 수입은 나누되 음반 수입은 다음 앨범 제작을 위해 저축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사이 여름엔 복날에 맞춰 ‘보신 음악회’나 회사 옥상에서 하는 ‘달을 녹이네’ 등 소규모 브랜드 공연이 자리 잡으면서 예전처럼 거리 버스킹을 할 순 없지만 관객과 최대한 가까이 만난다는 원칙은 고수하고 있다.

10주년 계획을 묻자 ‘순산’이라는 답이 가장 먼저 돌아왔다. 내년 2월 출산을 앞둔 안복진보다도 예비 삼촌들이 더 신난 모양새였다. 하여 25일 경기 화성 누림아트홀에서 멜로망스와 함께 하는 ‘올댓인디Ⅲ’ 콘서트를 끝으로 당분간 휴지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안복진은 “오늘도 공연이 있는데 아직 끄떡없다”며 “다음 앨범은 정규 3집이나 소품집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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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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